2016년 7월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 중이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중국이 극구 반대했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경북 성주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직후였다.
왕 부장의 불만 표출은 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턱을 괸 채 윤 전 장관의 발언을 듣는가 하면 보란 듯 중간 중간 얼굴까지 찌푸렸다. 급기야 윤 전 장관 면전에서 손사래 까지 치며 외교 석상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짜증의 제스처'를 남발했다. 국익 쟁취를 위해서라면 상대를 향한 으름장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중국식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의 단면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를 뛰어넘는 전랑 외교술을 몸소 보여줬다.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연회에 참석한 그는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붙잡고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이 캐나다 언론에 보도된 일을 직접 따지고 들었다. "우리 대화가 신문에 유출된 것은 적절치 않다", "대화를 위해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일국 정상을 향한 훈계를 서슴없이 뱉어냈다. 빤히 코 앞서 돌아가는 언론사 카메라를 못봤을리 없었다.
시 주석 말마따나 캐나다의 '언론 플레이'가 실제 있었다면 외교적 항의는 해봄직하다. 단, 이 같은 항의는 현장 실무진 채널에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베이징의 외교부가 주중국 캐나다 대사를 불러들여 항변해도 될 일이다. 정상 간 갈등을 드러내 구태여 상대국의 반감을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굳이 '카메라 앞 설전'을 택했다.
"외교는 이렇게 하라"는 메시지 발신 의도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1인자가 직접 선보인 전랑 외교를 목격한 중국 일선 외교관들이 적잖은 영감과 감명을 얻었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공산당수가 '이 정도' 하시는데 그간 나의 외교는 충분했나" 반성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지난 달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국익 수호를 위한 투쟁'을 독려한 터다.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가 이제 막 출발했다. 중국의 전랑 외교도 어쩌면 이제서야 본막을 열어젖힌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