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도 끊임없이 변하는 음식이다. 하기야 한식(韓食)이란 말도 예전엔 없었다. 한민족의 음식이란 뜻일 텐데, 실은 대한민국(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명명된 용어다. 사실 음식도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냥 음식이니 밥이니 했지 '한식'이라고 딱 끊어 맺는 건 민족주의의 대두와 관계가 깊다. 한식 이전에는 굳이 말하면 조선음식이라고 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불리는 경우도 드물었다. 남과 비교하면서 생겨난 명칭인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요리'라는 명칭이 언론에 자주 나오는데, 이는 일본 요리에 대비되는 개념을 또렷하게 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한식에서 자주 거론하는 게 부대찌개다. 햄과 소시지, 치즈와 미국식 통조림 콩이 들어간 하이브리드 이종 교배 클론 음식. 이 음식을 나는 한식이라고 주장하는데, 듣는 이들이 깜짝 놀란다. 한식이라면 뭔가 몇 첩 반상에 김치와 된장, 간장이 올라간 음식을 뜻한다고 배우고 의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식이란 당대 한국인이 먹는 다종다양한 음식을 포괄한다고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세계에서 오직 한국인만 먹는 음식인데도 '한식' 대접을 못 받을 때가 많다. 호부호형을 못 하는 건 꼭 홍길동만이 아니다. 부대찌개는 실상 김치찌개의 아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치가 안 들어가고 대파와 마늘, 매운 양념이 들어간 '문산 파주식 부대찌개'도 있으므로 의미를 확장하면 맵게 끓인 한국식 찌개라고 해도 된다.
부대찌개는 살아서 펄떡이는 현역 한식인데, 조선인과 한국인이 사랑했던 해장국은 뒤로 물러앉아 있다. 왕년에 술꾼은 다음 날 해장국을 먹는 게 정석이었다. 양복쟁이들이 바글바글한 종로, 을지로, 광화문, 무교동, 여의도 일대 빌딩숲 지하의 식당에선 반드시 해장국 파는 집이 있었다. 해장국 전문점이 아니어도 '해장국 합니다'를 붙여 놓고 팔았다. 그렇게 잘 나가던 민족음식 해장국이 이제는 애매한 자리에 있다. 한식은 유동성 강한 생물이다. 움직이고 변한다. '오리지널' 해장국은 원래 소뼈였다. 개화기를 묘사한 여러 글에는 서울 종로의 해장국집 묘사가 나오는데 "가마솥에 흠씬 소뼈를 끓여서 된장 넣고 팔았다"고 나온다. 된장은 요즘처럼 공장 된장이 없는 시대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된장 삽니다" 하고 외쳤다고 한다. 된장을 망친 집에서 옳다구나 하고 파는 걸 사다가 썼다. 해장국집에서 밥을 일일이 따뜻하게 만들 형편이 안 되어 손님이 밥을 가지고 가면 토렴을 해서 담아 주었다. 토렴이 국밥의 표준 제공 방식이 된 건 이런 배경이 있다. 가지고 온 밥은 식고 굳었으니까 말이다. 나중에 해장국집이 밥을 맘껏 지을 수 있게 된 후에 더운밥을 줄 수 있는데도 일부러 찬밥을 만들어서 토렴해 냈다. 일종의 '코스프레'가 된 셈이다. 이런 게 관습이다. 소뼈 해장국 전성시대가 위협받게 된 건 돼지뼈 해장국의 등장이다. 수입콩 콩깻묵이 쏟아지고 돼지 사육이 크게 늘어난 1970년대부터의 일이다. 바로 감자탕이라고 부른다. 소뼈보다 살점도 넉넉히 붙어 있고, 값도 싼 감자탕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마침 등장한 '다시다' 같은 복합 조미료도 맛에 한몫했다. 감자탕은 소뼈 해장국의 돼지뼈 버전이다. 그렇게 해장국도 세대교체를 하는 중이다. 전국적으로 감자탕집이 소뼈 해장국집보다 100배 이상 많다. 해장국 사먹던 조선시대 서울깍쟁이가 2022년의 서울에 오면 깜짝 놀랄 것이다. 돼지뼈로 해장국을 끓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