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에 처음 발을 디딘 뒤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꿈을 꾼 지 어느덧 20년. 한국에 첫발을 디딜 때 스물넷이었던 그는 경남 창원시에 정착, 어느덧 17년 차 직장인이자 세 아들의 아빠가 됐다. 그는 현대위아 직원이자 마라토너로 살면서 모국에서 끝내지 못한 대학 공부를 한국에서 마무리한 뒤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차례로 마쳤다. 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부룬디에서 2010년 귀화한 김창원(45)씨 얘기다.
21일 경남 창원시 현대위아 본사에서 만난 김창원씨는 "최근 셋째 아들이 태어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첫 입국 때만 해도 모든 게 불안했지만 이젠 직장, 가정, 학업, 취미생활(마라톤) 등에서 꽤나 많은 걸 이룬 셈이다. 김씨는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가족과 직장 동료, 동호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며 "특히 부룬디에서 나만 바라보고 한국에 와서, 마라톤하는 것까지 이해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김씨와 한국의 연결고리는 마라톤이었다.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하프마라톤 출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뒤 난민 신청을 하면서다. 15세 때던 1993년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소년 부징고 도나티엔(Buzingo Donatien·김창원씨의 부룬디 이름)은 전쟁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삶을 피하기 위해 한국 정착을 택했다.
그는 난민 신분으로 굵직한 대회서 풀코스를 제패하기 시작했다. 따져보니 '마라톤 좀 뛰어본' 한국인들의 존재 덕분이다. 김씨는 "나는 풀코스를 뛰던 선수가 아니었다"며 "한국 동호인들과 마라톤을 하다 보니 '서브스리(풀코스를 세 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일)' 해 봤느냐는 질문이 첫 인사일 정도로 마라톤에 진심이라 나도 덩달아 풀코스를 뛰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김씨의 최고 기록은 2007년 기록한 2시간18분39초. 이는 지난해 도쿄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나섰던 귀화 선수 오주한(도쿄올림픽 레이스 중 중도 포기)이 올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기록 2시간18분07초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일보 주최 철원DMZ국제평화마라톤에서도 2010년과 2011년, 2016년 우승했다. 김씨는 "마라톤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뛰고 싶다"고 했다.
2005년 마라톤 동호인 추천으로 지원한 현대위아에 입사한 그는 누구보다 바쁜 청년기를 보냈다. 부룬디 명문 부룬디 국립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경남대에 편입해 학사를 마친 뒤 직장 생활을 병행해 가며 학위 과정까지 끝냈다. 아침에는 마라톤, 낮에는 근무, 밤에는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웠다.
이젠 세 아들의 가장이다. 현대위아 차량부품생산관리팀에서 통관 업무를 맡고 있는 김씨는 "첫째가 8세, 둘째가 6세고, 최근에 태어난 아이까지 아들만 3명이 됐다"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피부색이 다른 데서 오는 편견이나 차별들이 걱정되지만, 학교와 이웃들이 잘 챙겨줘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사람은 다 똑같고 누구나 친해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경남대에서 쓴 석사 논문은 '아프리카의 품질경영 발전을 위한 품질명장제도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 박사 논문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품질교육시스템 설계에 관한 연구'다. 아프리카 산업의 미래를 생각한 주제다. 김씨는 "아직까지 아프리카가 한국에 비해서 부족한 게 너무 많다"며 "리더십 문제도 있고, 경쟁 체제도 없으니 발전 또한 더디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당장은 내 가족과 회사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면서도 "비록 먼 미래가 되더라도, 한국에서의 학업과 직무 경험이 아프리카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