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6,700명이 죽었다."
카타르 월드컵 개막 이전부터 서구 언론과 정치인, 인권 운동가 등이 꾸준히 반복하는 문장 중 하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021년에 집계한 수치로,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는 이보다 더 나아가 대략 1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카타르 월드컵에 따른 이주노동자의 정확한 사망 규모와 관련해선 "알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6,700명이나 1만5,000명 수치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다만 카타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문제는 별개다. 아울러 현재 현지에서 거주 중인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과 업무 환경 또한 분명해 보인다.
가디언은 지난 2021년 2월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최소 6,751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한 2010년부터 대략 10년 동안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5개국에서 카타르로 간 이주노동자 가운데 어떠한 이유로든 사망한 노동자를 각국의 대사관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수치다.
국제앰네스티는 2021년 발행한 보고서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카타르에서 이주노동자 1만5,02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수치의 출처는 카타르 정부의 공식 통계다.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한 2010년 12월 이후인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집계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1만5,799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망 원인이 근로현장에서 발생한 사고 등에 국한된 건 아니다. 자연사든, 사고사든 관계없이 카타르에서 월드컵 유치 이후 10년간 사망한 이주노동자를 모두 더한 수치다. 사실 가디언 보도와 앰네스티 보고서 모두 이 점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이주노동자 6,700명(또는 1만5,000명)이 죽었다"는 표현 자체는 오류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은 이민자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아 2014년부터 입국을 시도하던 2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항변했다. 카타르에 대한 비판을 '유럽 중심적'이라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기준으로 '일정 기간 사망자 수'를 꺼내며 되치기를 시도한 것이다.
카타르 당국은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에 대해 반박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 10년간 신축된 7개의 월드컵 경기장 공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 가운데 공사 중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총 3명이고, 월드컵 관련 건설현장에 종사하기는 했지만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자동차 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37명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월드컵 경기장 건설 공사와 연관된 숫자일 뿐이다. 카타르에서는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대대적인 건설 붐이 일었다. 도로와 지하철, 호텔 등 숙박시설 공사가 진행됐고 공항은 확장됐으며 수도 도하 북쪽에는 루사일이라는 계획 도시가 건설됐다. 여기까지 '월드컵 준비'라는 범주에 넣는다면 실제로 동원된 이주노동자와 사망 노동자 숫자도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카타르 이주노동자 가운데 사망자가 대부분 자연사라는 사인 통계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앰네스티 통계에 따르면 사망자의 70% 정도가 심장질환과 호흡기질환으로 인해 '자연사'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질환의 '원인'을 해명하지 못한다. 독일 공영방송 ARD에 따르면 카타르의 의사들이 사망진단서를 발행할 때 사인을 명확하게 조사해서 쓰지 못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열사병이나 과로 등을 의심한다.
카타르는 지난해 새로운 '열 스트레스법'을 적용해 6월부터 9월 중순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30분 사이엔 일손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젊은 이주노동자의 사망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카타르 당국도 뾰족한 해결책은 내지 못하고 있다.
카타르 당국과 FIFA는 지난 10여 년간의 준비기간에 카타르의 노동자 인권이 상당히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2020년에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최저임금제가 도입됐고 아랍권의 고질적 악습으로 꼽히는 '카팔라'도 전격 폐기했다는 것이다. 카팔라란 아랍권 특유의 피고용자에 대한 '후원제도'인데, 고용 후 입국과 카타르 내 이직, 귀국 등에 이르기까지 고용주가 노동자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했기 때문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중동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 단체인 '이주자 권리 프로젝트'는 카팔라가 명목상으론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부분적인 영향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거주 허가권은 여전히 고용주가 쥐고 있다. 노동자와 고용주 간 분쟁이 발생하거나 노동자가 이직을 선언할 경우 고용주는 즉각 이주노동자의 카타르 신원 보증을 취소할 수 있다. 노동자는 90일간의 체류가 허용되지만 별도로 신원보증을 신청해야 한다.
현재 '차별 없는' 최저 임금 수준은 대략 1,000리얄(약 37만 원) 수준인데, 카타르의 연간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6만2,000달러(약 8,400만 원) 수준이다. 현지에선 노동자들에게 고용주의 숙식 제공이 일반적이다. 이들은 보통 열악한 근무지 내 숙소에서 고용주의 경비 속에 집단 생활하기 때문에 쉽게 이동하거나 저항하기도 어렵다. 거주지를 이탈할 경우 '도주 노동자'로 몰려 분쟁에서 불리해지기 십상이다.
'이주자 권리 프로젝트'의 바니 사라스와티 국장은 "지난 12년간 카타르가 나름대로 해외 언론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인정하고 노동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며 성과가 없다고 보진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노동권 보장이 충분히 되고 있지 못하다면서 "카타르 정부가 모든 비판을 근거가 없다거나 인종주의적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용주에게 책임을 묻고 노동자의 사망을 명확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