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시가 역전

입력
2022.11.2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한 건 2020년 11월 3일이다. 당시 아파트 공시가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은 69%였다. 이걸 2030년까지 매년 단계적으로 조정해 시세의 9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명분은 조세형평성 제고다. 현실화율이 낮을수록 시세와 공시가격의 괴리는 커지고, 그런 괴리는 고가주택일수록 더 심하게 발생해 결과적으로 부자일수록 절세혜택이 커진다는 논리다.

□ 현실화율이 60%라고 치자. 시세 10억 원인 아파트 공시가는 6억 원으로 시세보다 4억 원 낮지만, 30억 원인 단독주택 공시가는 18억 원으로 시세보다 12억 원이나 싸게 잡힌다. 이렇게 낮게 잡힌 공시가에 또 한 번의 감가 변수인 ‘공정시장가액비율’(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의 60%)을 곱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료 등의 징수 기준이 된다. 그렇다 보니 고가주택 보유자들이 건보료조차 아예 안 내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은 조세형평성 외에 몇 가지 현실적 계산도 작용했다.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터였다.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공시가격을 올려 다주택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을 키움으로써 투기 매매를 줄이고, 다주택자 보유 물량의 시장 출회를 유도하려는 계산도 있었다. 물론 증세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은 최근 동력이 상실됐다. 무엇보다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고 집값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기계적으로 매년 현실화율을 높이는 계획에 무리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내년 현실화율은 평균 72.7%, 시세 9억~15억 원 아파트는 78.1%까지 돼야 하는데, 그랬다간 집값 하락으로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1차로 내년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려고 했다가, 최근엔 아예 올해보다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정당한 정책이라도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케 하는 사례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