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 보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올해도 표출됐다. 서울·경기·인천·부산·대전·대구·광주 등 지자체가 지난 15일 "도시철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대한교통학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지하철을 운영하는 전국 6개 도시철도공사의 무임승차 손실은 6,300억 원에 달해, 그해 경영손실(1조756억 원)의 60%에 육박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자체의 지원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국가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법령상 근거가 없고, 도시철도 운영의 주체는 지자체이기에 정부가 간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사이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손실을 부담하면서 각 지자체 도시철도공사의 재정난만 악화하는 상황이다. 공사는 매년 1조 원 이상의 공사채를 발행하거나 지자체의 혈세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가진 본보와의 통화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비롯한 공익서비스보상(PSO) 문제는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법에 따라 이뤄지는 무임승차 손실에 상응하는 보전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또 "그렇게 해야 경영난의 다른 원인인 낮은 요금의 현실화, 공사의 경영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의뢰에 따라 대한교통학회가 수행 중인 '도시철도 PSO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유 교수의 해법을 들어봤다.
-무임승차 손실을 왜 정부가 지원해야 하나?
"지하철 적자 원인은 크게 ①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②원가에 못 미치는 낮은 운임 ③경영 비효율 3가지다. 그중 운임 전액(100%)을 감면해주는 무임승차는 관련 국가 법령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법), 국가유공자(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법)에게 적용된다.
그런데 '공익서비스 시행으로 인한 운영손실은 그 원인 제공자가 부담하여야 한다'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32조에 근거해 수도권 광역철도를 운영 중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정부로부터 무임승차 손실의 60%가량을 매년 보전받는 반면 도시철도법에는 이 조항이 없어 국비 지원이 전혀 없다. 국가가 법률에 의해 무료로 태우라고 해놓고,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코레일은 지원하고, 도시철도공사는 지원하지 않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20대 국회 때 정부가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에 국비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관련 법안이 발의돼 국토위 문턱을 넘었으나 법사위에서 예산권을 가진 기획재정부가 반대해 폐기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이 담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과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말 국토위 여야 간사 합의로 법안소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전체회의에서 '연구용역을 실시해 그 결과를 보고 처리하자'는 의견이 나와 미뤄졌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연구용역 최종 결과는 내년 2월에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공청회도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연구용역을 총괄하는 김진희 연세대 교수가 무임승차 손실 실태를 발표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6대 도시의 지하철과 경전철을 이용한 승객(26억4,200만 명) 중 무료 탑승자는 5명 중 1명꼴인 18.8%(4억9,600만 명)였다. 65세 이상 노인이 82.3%(4억840만 명), 장애인이 16.6%(8,220만 명)였다. 80년대 전체 인구의 4% 수준이었던 65세 이상 인구가 고령화로 인해 17% 수준까지 늘어난 영향이다. 지역별 손실액은 서울이 3,709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1,396억 원)·대구(614억 원)·인천(297억 원)·대전(192억 원)·광주(92억 원) 순이었다.
-낮은 요금과 경영 비효율의 문제도 있는데 왜 꼭 정부가 지원해야 하나?
"무임승차 손실 보전 문제가 해결되면 정확한 운송원가를 따져볼 수 있어서다. 사실 지하철 요금은 대중교통 이용 장려와 교통 복지 차원에서 원가보다 낮게 책정됐고,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요금 결정 권한을 보유한 각 지자체장이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적자가 심해 지자체가 요금을 인상하려 하면,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중앙 정부나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의 직·간접적 압력이 작용해 그렇게 할 수 없는 구조다. 지하철 운영기관은 이런 점을 적자 구조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자구노력을 게을리하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원인제공자인 정부가 무임승차 손실을 보전해 깔끔하게 정리하면, 요금이 원가와 얼마나 격차가 있는지 따져보고, 요금을 올릴지 세금으로 메울지 등을 공론화할 수 있다.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운영기관에도 경영효율화와 개선을 당당히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재정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임승차 손실 보전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요금 현실화가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지난해 기준 승객 1명당 수송원가는 1,988원이지만, 기본요금(1,250원)에 각종 할인·무임승차 등을 반영한 평균 요금은 999원으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원가율이 50%에 불과해 1명을 태우면 989원씩 손해였다는 뜻이다. 이는 지하철 기본요금이 2015년 6월에 200원 인상된 이후 7년간 동결된 탓이 크다.
유 교수는 "지자체가 평균 4, 5년마다 운임을 조정했는데, 그 이유가 큰 선거를 앞두고 요금을 올리면 여권에 불리하니까 절대 안 올리는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듯, 정부에 대중교통요금위원회를 만들어 매년 인상요인을 따져 인상폭을 결정하자고 제안해왔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운영사들이 코레일 수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정된 예산을 운용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그만큼 지원이 어려울 수도 있다.
"내년엔 '베이비붐세대(1955~63년생)'를 상징하는 '58년생 개띠'가 만 65세가 돼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다. 당분간은 매년 무임승차 인원이 이전에 비해 급증하니까 정부도 손실 보전 문제를 더 이상 뭉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무임승차 손실의 5%, 10%만이라도 지원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지원을 시작하면 인구 추계에 따라 연도별로 필요한 지원금액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고, 연령 기준 상향, 무임승차 이용시간대 제한 등 현실에 맞게 여러 대안을 논의해볼 수도 있다."
2020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기준에 따른 베이비붐세대 연도별 인구는 1955년생 70만4,000명, 56년생 68만2,000명, 57년생 75만7,000명이었으나 1958년생 76만5,000명, 59년생 83만8,000명, 60년생 90만9,000명, 61년생 90만2,000명으로 증가한다. 62년생(87만 명)과 63년생(78만5,000명)도 58년생보다 출생자가 많다. 그만큼 무임승차 손실도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무임승차 손실 보전이 노인 복지 차원의 국가 지원이라면,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역차별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그 지적도 옳지만, 전 국민의 70%가 도시철도를 이용하니까 (국비 지원에) 여야 의견이 갈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국비지원은 당연히 해야 하고,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과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불거진) 지하철 안전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보고, 국민적 합의에 따라 무임승차 나이를 조정하는 것을 포함해 중장기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