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정세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구도가 아니다. 규칙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국제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중국과 나머지 세계의 대결이다."
미국 공화당의 대권 잠룡이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총괄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이다. '중국몽'(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통치이념을 앞세워 반(反)민주주의·반시장 노선을 거침없이 걷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겨냥해 "전 세계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도 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주최로 열린 '2022 코라시아포럼'에서 안호영 전 주미대사와 화상 대담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담 주제는 '미중 대립, 미국 외교의 방향은'이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미 하원의원 출신으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원조 매파이다. 안 전 대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3년 6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주미대사를 지냈고,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안 전 대사는 미중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1·8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내년 1월 새로 출범할 미국 의회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시 주석 역시 주석직 3연임 확정으로 확대된 권력으로 더욱 확신에 찬 행보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도 시 주석 체제의 일방적인 몸집 키우기를 걱정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40년간 서구와 전쟁을 벌여 왔다"며 "최근엔 한국, 일본, 필리핀과 특히 대만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에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폼페이오 전 장관은 "중국은 모든 국가가 자신들에게 찬사와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고, 다른 국가의 주권을 파괴하고 싶어한다"고 중국을 직격했다. 또 "중국이 자유세계에 걸어온 싸움을 자유국가라면 용인해선 안 된다"며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전 세계가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올해 6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의 미국 동맹국들을 초청했고, 나토 전략개념에 중국 위협론을 명기해 반중국 연대를 다졌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중국이 우주와 사이버 공간 등에서 위협적 활동을 하는 것 때문에 유럽 안보가 위험에 처했다"며 "영토에 기반한 방위를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서 (미국, 유럽의) 파트너들이 자유를 지키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 시장에서 중국을 배제하려고 미국이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F)'와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동맹' 경제협력체를 구성하는 시도와 관련해 폼페이오 전 장관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꺼리는 공급망 문제의 주범은 중국"이라며 "희토류 산업이 중국의 통제를 받는 것이 한 사례"고 지적했다. 이어 "자유를 사랑하고, 재산권을 믿고,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공급망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중국이 북한과 한편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에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건 중국이 이를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중 밀착의 근거로 "(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협상을 하면, 김 위원장은 그전이나 후에 항상 시 주석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들었다.
중국의 역할 없이는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무력 도발을 용인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를 막고 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바이든 정부를 향해 "중국이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된다. 제재 미이행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안 전 대사는 "최근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많이 발사하는데, 단거리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북한의 핵 기술과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각을 세웠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노력을 이어받지 않았고, 그 결과 현재 (동북아의) 위험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한미 간 첨예한 이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대담에서 논의됐다. IRA는 미 정부가 전기차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한국과 유럽산 차량에 지급하지 않아 불공정 거래 논란을 불렀다. 안 전 대사는 "IRA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대우 원칙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된다"며 "미국은 국제사회의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특히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조항은 그대로는 시행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다시 장악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 수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안 전 대사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양국 사이에 다시 우선순위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그럴 수도 있다"면서 "나 역시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동맹국들을 설득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했다"고 답했다.
안 전 대사는 "중간선거에서 인플레이션이 주요 이슈였던 만큼, 미국의 경제 분야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될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폼페이오 전 장관은 "미 의회는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생산하는 에너지가 우방국과 협력국으로 흘러가도록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회의적 입장도 밝혔다. 미국이 화석연료 퇴출에 나설 것이 아니라 세계 1위의 석유·천연가스 생산국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청정에너지 혁명을 내세운)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나쁜 국가들이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게 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