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국회 문턱을 넘어 내년 초 시행을 목전에 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한 정치권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의원 시절 관련 법안 발의를 주도했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예가 필요하다"며 정부안으로 세법 개정안을 낸 데 이어, 대선후보 당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마저 '신중론'으로 돌아서면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강조했던 여야가 2년 만에 입장을 바꾼 이유는 뭘까.
금투세 도입은 여야가 모두 강력하게 주장해 온 주요 정책이었다. 투자 이익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 조세 정의에 부합하고, 금투세를 걷는 만큼 증권거래세를 낮추는 것이 개인 투자자에게도 유리하다는 점에서다.
법안이 첫 발의된 20대 국회 때 야당이던 국민의힘에서는 당시 기재위원회 조세소위 위원이었던 추 부총리가 총대를 멨다. 추 부총리가 2019년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과 증권거래세법 폐지안에는 ‘주식, 펀드, 채권, 파생상품, 파생결합증권을 하나의 금융투자상품 거래로 손익을 통산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내용과 ‘양도소득세 과세범위 확대 계획과 연계해 증권거래세율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증권거래세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법안은 21대 국회로 이어졌고, 2020년 정부안이 만들어졌다.
추 부총리가 입장을 바꾼 건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주식양도세 폐지' 공약을 내세우면서부터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현재 유예안을 낸 정부와 발을 맞춰 세금 부과 시기를 미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도 대선후보였던 지난해엔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그는 유튜브 ‘와이스트릿’ 인터뷰에서 ‘내후년(2023년)에 금투세를 전면 과세하는 것은 이르다’는 지적에 “(유예를) 고려해 보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조세 제도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미뤄야 할’ 합리적 근거를 만들지 못하면 정책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금투세 도입 당시에는 주식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투자자들이 세금을 내는 게 맞고, 손실을 봐도 거래세를 내야 하는 대다수 투자자의 부담은 덜어야 한다는 '원칙론'이 힘을 받았다. 과세 대상인 연간 5,0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얻는 투자자가 전체 투자자의 0.9%에 불과한 만큼 대다수 투자자에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다 주식시장 하락기에 접어들자 세금을 내는 '큰손'이 시장을 떠나면 시장에 균열이 생겨 다른 투자자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졌다. 지난달 12일 국회 청원사이트에 올라온 ‘금투세 유예’ 청원은 2주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기재위에 전달된 바 있다.
이에 금투세 도입을 강행할 경우 지지자들이 떠날 것을 우려해 주요 정치인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다. 민주당도 15일 정책위원회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금투세 도입 재고 여부를 논의했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금투세 납부 대상인 고액 투자자가 떠나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심리 때문에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법안 처리의 ‘키’를 쥔 민주당 기재위 의원들은 완강하다. 기재위 의원들은 지난 10일 낸 입장문에서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어야 하고, 손실에 과세를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며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기재위 간사인 신동근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손실을 보면서도 증권거래세를 꼬박꼬박 내는 자체가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원칙론을 앞세운 민주당 의원들이 금투세 유예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2년 뒤 총선 결과에 따라 국민의힘이 국회 다수당이 되면 ‘폐지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이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금투세 유예는 당연하고 폐지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식시장 상승기에는 법 시행이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주식 투자를 통해 공제 기준인 연간 5,000만 원 이상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져서다. 민주당 기재위 소속 의원은 "주식 시장이 좋았던 2년 전에도 큰 반발이 있었지만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이라며 "대부분의 투자자에게는 이익인 만큼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