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정책대로면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점 이르면 2027년 말"

입력
2022.11.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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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물학회, 사용후핵연료 발생 및 전망 분석
당초 전망보다 포화시점 4년가량 앞당겨져
"국회 계류 중인 특별법 제정 등 조속 조치해야"


'원전 최강국'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정책대로 원전 가동률을 높이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이 이르면 2027년 말부터 차례대로 가득 찰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른 포화시점 전망이었던 2031년보다 4년가량 앞당겨진 셈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방폐장) 설치를 위한 법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서둘러 방폐장 설립을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운전 가능한 원전을 세워야 하는 상황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방폐물학회)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발생량 등 재산정에 관한 연구용역'의 초기 결과물을 보고받았다.

방폐물학회는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을 산정했다. ①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을 바탕으로 마련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설계 수명이 끝난 원전의 계속 운전을 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2031년부터 한빛·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 원전(2032년), 신월성 원전(2044년), 새울 원전(2066년) 순이다.

②두 번째는 2030년까지 설계 수명이 다하는 원전 10기를 계속 운전하는, 현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다. 원전 설계 수명은 고리2·3호기가 각각 내년과 2024년 끝나고 이후 고리4·한빛1호기(2025년), 한빛2·월성2호기(2026년), 월성3·한울1호기(2027년), 한울2호기(2028년), 월성4호기(2029년) 순서로 마무리된다. 윤석열 정부는 안전하다는 점을 전제로 이 원전들을 계속 돌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 밖에 학회는 ③건설 재개 예정인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돼 운전할 경우, ④2030년 이후 설계 수명이 다하는 원전을 계속 운전할 경우, ⑤2030년 이후 신규 원전을 포함해 계속 운전할 경우 등 세 가지 장기 시나리오에 따른 사용후핵연료가 꽉 찰 시점을 분석했다.

문제는 사실상 이번 정부 원전 정책에 따른 두 번째 시나리오 분석 결과, 당초 최초 포화 시점이 2031년이라고 내다봤던 기존 분석보다 무려 4년가량 앞당겨진 2027년 말부터라는 점이다.


영구 처분장 없으면 멀쩡한 원전 세울 수도

산업부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확정된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방폐장 부지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 내 영구처분장을 확보하기로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성 원전의 일부를 뺀 대부분 원전은 기존 원전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을 사용후핵연료의 이동이 불가능한 습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맥스터 같은 중간저장시설을 지어도 환경영향평가 등 필요한 절차를 거치면 2027년 말은 촉박하다. 방폐물 영구 처분장 설치 근거법에 해당하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여야 모두 발의했지만 답보 상태다. 산업부는 결국 포화 시점을 조금 늦출 수 있게 재산정하도록 방폐물학회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선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멀쩡한 원전 운영을 중단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지난해 사용후핵연료 저장 공간이 부족해 원전을 조기 폐쇄했다.

윤종일 카이스트 교수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원전 지역 주민들이 부지 내 저장 시설이 영구 처분장으로 변질될 것이라 믿는 등 원전 관련 불신이 크다"며 "정부가 원전 부지 내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반출 시기 약속 등을 담은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이 서둘러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만시지탄’(晩時之歎·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쳐 원통해 탄식함)할 것이라는 경고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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