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보면서 우신 적 있나요, 기자님?"

입력
2022.11.20 07:00
[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발달장애 가족 릴레이 인터뷰⑪-하
연천군 자폐 아동 싱글맘 지연씨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설문 응답자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생생하고, 아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개그콘서트 보면서 우신 적 있나요, 기자님?"

경기도 연천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과 둘이 사는 최지연(44)씨는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발달장애 가정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 “저희 집엔 TV가 없어요. 오히려 TV 보면 우울하거나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코미디 프로에서 왜 ‘바보 모지리’처럼 나오는 애들 있잖아요. 방청객은 막 웃는데, 저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도 아들 낳기 전에는 몰랐었죠. 저도 그렇게 웃었을 거예요.”

아들의 자폐 진단, 펑펑 울었던 날

싱글맘인 지연씨 성을 물려받은 최민재(가명·13)군은 자폐 스펙트럼 '심한 장애'(구 2급)를 가지고 있다.

그는 아들의 자폐 성향을 생후 12개월 즈음 알아차렸다. 평균 발견 시기(자폐는 3.1세)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그럼에도 서울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데까지는 5개월을 대기해야 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수도권 지역의 유명 소아정신과 교수 진료는 이미 3~5년 뒤까지 예약이 꽉 차서 부모들이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관련기사▶"자폐 전문 교수님, 2027년까지 진료 예약 끝났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0310430004161로 검색하세요.)

"애를 딱 5분 보시더니, 자폐라고 하시더라고요. 복도에 나와서 펑펑 울었죠. 저는 원래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있었거든요. 저희 엄마도 저를 혼자 키우셨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냐' 그랬죠. 아이를 좀 키워놓고 나면, 서울에서 직장에 다녔던 예전처럼 일을 다시 나가려고 했었죠."

그러나 아들의 장애를 알게 된 후, 지연씨의 '최우선 목표'는 아이의 자립이 됐다. 그러려면 힘닿는 데까지 교육과 재활치료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진단 직후인 생후 17개월부터 연천에서 의정부까지 왕복 2시간 거리를 달려 발달재활 치료실에 다녔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사정은 넉넉하지 않아도 해 줄 수 있는 데까지 다 해 줄 결심이었다.

지연씨 모자는 지금도 양주(특수체육·놀이치료)와 의정부(수영)로 재활치료 수업을 다닌다. 연천군에는 군청 지원을 받는 치료실이 한 곳뿐인 데다, 그곳도 선생님이 많지 않고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치료실 수업료는 회당 4만5,000원 정도다.

“정부가 지원하는 발달재활 바우처 단가가 회당 2만7,500원(최대 월 22만 원 지원)이잖아요. 실제 치료실 금액이랑 차이가 크죠. 근데 재활치료비도 기본적으로 회당 4만~5만 원일 수밖에 없는 게 치료사 선생님들도 벌이가 되셔야 취직하실 것 아녜요. 그 정도 아니면 오시지도 않으세요. 상황이 이러니 (발달장애 가정의) 자기부담금이 커질 수밖에 없죠.”

엄마 탓하는 잘못된 편견

비도심 시골 지역의 장애인 인프라 부족, 세심하지 못한 복지 행정만큼이나 지연씨를 힘들게 했던 건 '자폐·발달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지연씨는 예전에 '장애인 활동지원사' 교육 과정을 이수한 적이 있다. 나중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생계수단을 마련할 겸, '우리 아이를 보러 오게 될 분들이 어떤 교육을 받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발달장애 원인을 '엄마의 흡연과 약물 중독'으로 설명하는 대목에서, 지연씨의 손은 부들부들 떨릴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는 유전적 원인, 후천적인 뇌 구조 손상, 환경적 요인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각에서 여성의 노산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자폐의 경우 남성(아빠)의 나이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돼 있다.

"발달장애는 뚜렷하게 딱 떨어지는 원인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술 먹고, 담배 피워서 장애아가 나왔다는 식으로 교육을 하니까… 너무 화가 나고 열 받더라고요. 선입견을 만드는 거죠."

지연씨는 주변의 다른 발달장애 아동 엄마 역시, 자녀의 또래 친구에게서 '아줌마, 아줌마가 담배 피워서 ○○이가 아픈 거예요?'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얘기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어린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어른들이 그런 말, (흡연) 탓하는 걸 보고 들은 거겠죠. 속상하고 어이도 없지만,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세상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어요. 내 가슴만 아픈 거예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특수아동 전문 어린이집, 특수학교 하나 없는 연천군에서 어렵게 자란 민재군은 내년 A 중학교에 진학한다. 그것도 하마터면 특수교사도 없는 상황에서 보낼 뻔했다. 장애 학생이 1명이면 교사 배치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지자체 특수교육지원청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B 중학교는 대중교통으로 편도 30~40분 거리였다. 아들의 특성을 생각하면, 도저히 보낼 엄두가 안 났다.

"A 중학교는 셔틀버스가 있고, B 중학교는 없거든요. 근데 '어머님, B 중학교가 집에서 거리는 더 가까워요' 이러시는 거예요. 집 앞 5분 거리도 안 되는 초등학교에 민재 혼자 걸어가게끔 가르치는 데도 2년이 걸렸어요.

아이가 개미 한 마리를 못 죽여요. 땅에 있는 개미가 죽을까 봐, 조심조심 걸어요. 길 걸어가는 개랑도 잠깐 놀고, 멈춰서 하늘의 새도 한번 보고. 그렇게 걸으면 5분 거리를 20~30분 걸려서 가는 거예요. 근데 버스 타기 전에 오며 가며 정류장까지 15~20분 걸어야 되는 중학교에 보낸다? 통학하는 것만 가르쳐도 고등학교 올라갈 때 되겠네, 싶더라고요. 사실상 3년 내내 저보고 등하교 시키라는 말씀인 거죠."

'일단 A 중학교에 보내놓고,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결심한 순간, 천운처럼 다른 장애 학생 1명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연씨도 이처럼 열악한 교육·재활치료 인프라 상황에 이사 고민을 여러 번 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발달장애인 가정 1,07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2개 지역에서 인프라 문제 등으로 이사를 이미 했거나, 이사를 고려한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60%가 넘었다.


지연씨는 말했다. “특수학교도 요즘엔 여기저기 생겼다지만, 그것도 근거리 위주로 뽑아요. 돈 넉넉히 있는 사람이면 이사를 가겠죠. 주변에 보니까 보통 3, 4년 전에 미리 가서, 대기 걸어 놓더라고요. 근데 당장 저는 꿈도 못 꾸죠. 지금 방 하나 있는 집에서 보증금 1,000만 원에 25만 원 월세를 사는데, 이사를 어떻게 가겠어요.”

(관련기사 ▶특수학교 찾아 빚지고 이사...특수학급 요구엔 "딴 학교 가라": 클릭이 되지 않으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0409060001371 로 검색하세요.)

싱글맘은 일하면 아이 재활은 포기해야 한다

지연씨는 아들을 키우며 현실적으로 가장 힘든 게 '돈' 문제라고 했다. 지자체에서 생계급여 지원을 해 주고는 있지만, 상시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라'는 심리적 압박을 준다는 것이었다.

10여 년 전 아들의 어린이집 입학 때에는 구청에서 '이제 수급비 못 드린다'는 말을 들었다. 일할 시간, 여유가 생기지 않았냐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없는 소득'을 '있는 것'처럼 신고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안 그러면 지원이 어렵다고 했다. 마지못해 그렇게 했더니, 수급비에서 딱 그만큼 돈이 차감돼 들어왔다. 어떤 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무엇을 하는지 일과를 소상히 써내라고 했다. "정말 치욕스러웠어요."

"저는 계속 선택을 강요받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제가 일을 하면 아들의 발달재활치료는 포기해야 하고, 치료를 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한 건데 지자체에서는 '둘 중 하나만 골라'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차라리 (돌봄을) 책임져주면 제가 편하게 일이라도 다니겠지만, 그런 제도도 환경도 안 갖춰진 상태에서 (돈과 치료 중 하나를 택하라는 건) 애를 '동네 바보'로 키우라는 것밖에 안 되는 거죠."

월 120시간을 받은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해 보려고도 해 봤지만, 동두천 소재 활동지원 제공기관에까지 공고를 올려도 오려는 활동지원사가 없었다.

"'공공근로라도 하셔야 하지 않겠냐' 그런 말하시는 것도 이해는 해요. 근데 장애 아동을 혼자 키우는 엄마 상황을 좀 더 이해해 주시면 싶은 거예요. 저도 사회생활 못한 지 10년 넘은 상황이 불안해요. 활동지원사 교육도 혹시 몰라 이수해뒀고요. 근데 방과 후엔 치료실 데려가야 하죠, 방학 땐 아이가 학교도 안 가니 이런 저를 누가 써주겠냐고요. 직업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걸 이해 못 하시는 거죠."

▶지연씨의 인터뷰 상편 바로가기: 지연씨와 민재의 사연은 어제(19일) 기사를 통해 더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11113130004896 로 검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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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