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매체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14일 온라인에 일방적으로 올렸다. 이 채널이 명단을 넘겼다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추모 미사를 열고 희생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유족이 슬픔에 빠져 있는 사이 희생자 명단이 유출된 것도 통탄할 일인데, 유족 의사와 무관하게 온라인에 퍼지고 공개적으로 호명된 것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시민사회에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명단을 올린 매체는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며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언론에는 “윤리적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문제를 알면서도 강행했다는 얘긴가. 이 매체는 “공개를 원하지 않는 유족이 연락하면 반영하겠다”며 일부 이름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공개와 비공개 과정 모두 자의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공개 철회를 요구했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진정한 추모가 아니라고 논평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도 유감을 표했다.
명단 공개는 참사를 정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매체의 친야 성향을 지적하며 ‘더불어민주당 배후설’을 제기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앞서 명단 공개를 주장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직성이 풀리시나”라고 꼬집었다. 정작 민주당은 동의 없는 공개는 부적절하다고 뒤늦게 선을 그었다. 유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암담하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유족의 뜻을 거스르는 방식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대통령 전용기 추락을 염원한다는 글을 올린 사제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참사를 막지 못하고도 책임을 피해 가려 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나, 도 넘은 막말은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성역 없는 수사와 함께 성숙한 애도 역시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