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 주연 영화 '파 앤드 어웨이'(1992년)의 후반부. 아일랜드 이민자 조셉 도널리(톰 크루즈 분)는 미국 오클라호마 들판에서 말을 달려 가장 먼저 깃발을 뽑은 뒤 이렇게 소리쳤다. 주인 없는 빈 땅을 향해 누구든 가장 먼저 달려가 소유권을 선언하면, 그게 바로 그 사람 땅이 되는 랜드러시(land rush)의 시대였다.
이 영화는 오클라호마에서 실제 있었던 대규모 토지 쟁탈전을 담고 있다. 1889년 4월 22일 정오. 1만 5,000명(일설에는 5만명)의 사람들이 오클라호마 들판에 그려진 출발선 앞에 긴 횡대로 늘어섰다. 규칙은 단 하나. 가장 먼저 도착해 미리 꽂혀 있는 깃발을 뽑으면 끝이다. 부정 출발을 감시하기 위해 군부대가 배치될 정도로 경쟁은 치열했다.
당시 서부 개척에 한창이던 미국은 땅이 남아돌았고 사람은 모자랐기에, 이런 방법을 통해 미개척지로 사람을 유도했다. 그러나 '미개척지'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 나온 표현일 뿐, 사실 이 땅은 북미 대륙 원주민(인디언)들이 살던 곳이었다. 땅을 차지하려는 탐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뒤엉킨 이 날의 랜드러시는 주인 없는 땅을 다루는 '미국식 정의'를 여실히 보여줬다.
가장 빠르고 힘센 자가 먼저 깃발을 꽂으면 '땅 주인'이 되는 정의의 방식은 두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이제 지구상에선 랜드러시를 할 곳이 없지만, 미국은 우주공간의 달 쪽으로 눈을 돌리며 '문러시'를 시작할 채비를 갖췄다. 16일 첫 로켓 발사에 성공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유인 달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Artemis)가 바로 그것이다.
황무지 같던 오클라호마가 나중에 미국 원유 생산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처럼, 아폴로 착륙 당시 텅 빈 위성 정도로만 여겨졌던 달은 최근 희귀 자원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헬륨-3의 경우 고요의 바다(아폴로 11호 착륙지) 표면에만 1만 톤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 원자력 등 기존 발전을 멈추고 전 세계가 나눠 써도 27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다만 21세기 문러시가 19세기 랜드러시와 차이가 있다면, 그 출발선에 미국과 그 친구들만 서 있다는 점. 달에 유인 우주기지를 가장 먼저 설치할 나라는 결국 미국이다. 무인 착륙은 러시아(당시 소련)와 중국만 가능했고, 궤도 탐사는 일본 유럽연합(EU) 인도만 성공했을 뿐이다.
우주개발 후발 주자인 한국에겐 생소하지만, 세계 각국은 오래 전부터 달을 포함한 우주 공간에서 지켜야 할 국제규범에 대해 논의해 왔다. 지금은 미국이 우주개발을 독식할까봐 다른 나라들이 견제에 나서는 구도지만, 60년 전엔 소련의 독주를 막으려는 미국이 "우주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논리를 설파했다.
2차 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의 미사일 기술을 흡수한 소련은 1957년 10월 세계 최초 우주선 스푸트니크 1호를 쐈다. '우주 로켓이냐 미사일이냐'를 두고 국제 사회에서 설왕설래가 오가자 한 달 뒤엔 세계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우주에 올려 서방의 입을 다물게 했다. 미국은 부랴부랴 나사를 만들었고, 유엔은 우주 활동에 대한 국제 규범 논의에 착수했다.
이후 합의된 우주 규범의 핵심 내용은 가장 처음 체결된 우주조약(외기권조약)에 담겼다. 1967년 유엔에서 체결된 우주조약은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우주에 대한 탐사·이용은 모든 국가를 위해 수행돼야 하며 전 인류의 활동범위'(1조)라고 명시했다. 또한 '국가의 전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2조)고 못박았다. 달에 대한 국가의 소유나 주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운 것이다.
다만 우주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엔 달에서 유용한 자원을 캐내 지구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우주조약이 체결된 1967년은 아직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1969년)하기 전이다. 아폴로 11호 착륙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지만 워낙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여서 국제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노력 끝에 1984년 7월 달협정(달과 기타천체에서 국가활동을 규제하는 협정)이 발효되긴 했다. 달의 자원을 '인류 공동유산'으로 규정하고 '당사국들은 달 천연자원의 개발이 가능할 때에 개발을 규율할 국제 제도 수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달 탐사의 이익을 달 탐사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와도 공평하게 공유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달에 간 나라가 혼자 자원을 독식할 수 없다는 내용에서 보듯 달 협정에는 개발도상국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다만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요 우주 개발국이 서명하지 않으면서 의미가 퇴색했고, 아직까지 실제 적용된 적이 없어 사문화된 문서로 평가받는다.
우주개발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미국은 우주 규범을 자국의 국내법 체계로 끌어들였다. 미국은 2015년 상업우주발사경쟁력법(Commercial Launch Competitiveness Act)를 제정했는데, △소행성자원 또는 우주자원의 상업적 채굴을 한 미국 국민은 취득한 모든 자원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에는 획득 자원을 소유·운송·사용·판매 권리가 포함돼 있다는 내용이 있다. 미국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우주 개발에 나설 길을 열어 둔 것이다.
미국의 국내법 제정은 달 자원 이용에 관한 국제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자원의 추출 역시 우주조약이 허용한 우주의 이용"이라는 지지 의견도 있었지만 "(한 나라가 자원을 독점할 수 없다는) 달협정 논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러시아의 반대도 있었다.
그 사이 미국은 2020년 10월 유인 달탐사 계획을 담은 아르테미스 약정(Artemis Accord)을 만들어 서명국을 확대했다. 첫 서명국은 8개국이었지만,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21개국이 이 약정에 참여하는 중이다.
아르테미스 약정은 기존 우주법의 구멍이라 할 수 있는 우주 자원 이용에 관한 원칙을 담고 있다. 이 약정 10조는 "우주자원의 채굴 및 이용은 1967년 우주조약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안전하고 지속적인 우주활동을 돕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달, 화성, 혜성 또는 소행성의 표면 또는 지하 자원의 활용"이 가능하도록 열어뒀다.
미국은 왜 굳이 이런 협정을 통해 달 자원 개발에 관한 일종의 '국제 컨소시엄'을 형성하려고 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우주자원 이용에 대한 세계 각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아르테미스 약정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①자원 이용 원칙에 대한 개별국 동의를 얻은 뒤 ②그 원칙에 따른 자원 채굴에 성공함으로써 ③우주 자원에 관한 선례와 새로운 국제 규범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우주법 전문가인 정영진 국방대 교수는 "미국의 최종 목표는 (민간이 우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국내법을 국제법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최대한 많은 국가와 함께 달 탐사에 나서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협정에 참여하는 21개국 면면을 보면, 미국이 앞으로 우주 자원 활용 분야에서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우주 자원을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참여국에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또는 집단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인 한국 일본 이스라엘 호주 뉴질랜드 영국 프랑스 룩셈부르크 루마니아 캐나다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중국 러시아 및 중·러와 가까운 국가는 이 협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자체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등 천문학적인 돈을 우주개발에 쓰는 중국은 우주에서도 미국의 경쟁자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약정을 두고 "달을 식민지화하고 달에서 주권을 주장하기 위한 미국판 인클로저 운동"(환구시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클로저 운동은 근세 초기 유럽에서 공유지나 황무지에 울타리를 치고 자기 영역이라고 주장하던 현상이다.
다만 중국도 유인 달 탐사 계획이 있긴 하지만 미국보다는 시작이 늦은 상태다. 러시아는 우주 강국이지만 경제난 때문에 새로운 우주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결국 인류가 새로 개척한 신대륙인 달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과 그 우방국들이 달 자원 개발 밑 분배와 관련한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21세기판 랜드러시(문러시)를 담은 '파 앤드 어웨이 속편'은 어쩌면 이런 대사로 끝을 맺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