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입항을 거부한 난민구조선을 프랑스가 받아들인 것을 계기로 유럽 내 이주민 수용∙분배를 둘러싼 논의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프랑스가 이주민 234명을 받으면서 "비인간적 이탈리아"라고 비판하자, 이탈리아는 "생색내지 말라"고 맞서며 감정싸움이 격해진 탓이다.
언뜻 프랑스가 이주민에게 관대한 듯하지만, 사실 덜 받고 싶어 하는 속내는 비슷하다. 중동∙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작지 않은 데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거 받은 상황이라 추가로 받을 여력도 없다. 다른 국가들 사정도 비슷하다.
문제는 체면이다. 이주민 수용을 덜 하면서도 국제사회 비판을 덜 받으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이에 저마다 방안을 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동일한 목표를 좇다 보니 합의점 찾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불법 이민 엄단'을 내걸며 취임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민자 거부를 합법화·합리화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한창이다.
1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이탈리아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난민 구조를 돕는 비정부기구(NGO) 규제법을 시행한다. NGO 활동에 제약을 걸어, 난민 입국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예상 내용은 이렇다. '생명의 위험에 처한 난민을 구조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어기면 배를 몰수당하거나 최대 100만 유로(약 13억7,175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앞서 '난민 구조선은 선박 소속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탈리아는 환자·취약 계층만 수용할 것'이라고도 발표한 바 있다.
지중해 인접국인 그리스·몰타·키프로스와 힘을 합쳐 EU 집행위원회에 "우리 책임이 너무 크니 공정한 분배를 위한 협의를 개시해달라"고도 공식 요구했다. 이탈리아가 공동 대응을 주도하는 데는 EU 내 협상력을 키우고 비판을 분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통계상 착시도 활용한다. 멜로니 총리는 프랑스의 비판에 "올해 이탈리아가 받은 인원이 약 9만 명"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절반은 이탈리아를 기착지로 삼고 다른 국가로 건너갔다는 게 현지 언론 라 르푸블리카 지적이다. EU 통계국 유로스탯도 지난해 이탈리아 망명 건수(4만5,200건)가 프랑스(10만3,800건)보다 적다고 보고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가 '난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법을 어겼다는 점을 들면서 난민 수용에서 손을 떼는 중이다. 국제법을 어긴 국가에 이득이 되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프랑스는 우선 지난 6월 EU 합의를 토대로 한 '이탈리아 유입 난민 3,500명 수용' 계획을 취소하고, 해당 합의에서도 탈퇴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탈리아로부터 넘어오는 이주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단속 인원을 500명 더 배치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자국 해역에서의 감독도 강화할 예정이다. '이주민들이 영국 해협을 건너지 못하도록 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영국의 요청을 수락하는 형태지만 '이주민이 아예 출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구상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양국은 '프랑스 순찰 인력을 현 200명에서 2025년까지 300명으로 늘린다'는 내용의 계약을 이번 주 중 체결할 예정이라고 가디언 등은 보도했다.
영국은 아예 이주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로버트 젠릭 이민부 장관은 최근 현지 언론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영국이 '망명 쇼핑'의 선택지가 됐다"고 했다. 경제적 혜택을 얻고자 많은 이주민이 난민으로 위장한 채 영국으로 들어온다는 주장이다.
EU는 조만간 회의를 소집해 이견 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견해를 좁히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미 EU 차원에서 △난민 망명 신청 센터 설립 △역외 입국 관리 시설 설치 등에 합의한 전례가 여러 번 있지만, 어디에 설치할지,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지 등을 두고 갈등이 심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