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일본의 정상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은 사실상 인도ㆍ태평양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정치 지형을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한미일 3국이 이를 위협하는 북한ㆍ중국ㆍ러시아에 맞서겠다는 내용이 조목조목 담겼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도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 움직임을 두고 중국과 러시아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한국이 한미일 공조 쪽에 더 기울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날 3국 정상회의를 전후해서는 미일, 한미, 한일 정상회담도 연달아 개최됐다. 한미일 정상이 한날 한자리에서 릴레이 회동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3월 31일 미 워싱턴에서 한미, 한미일, 미일, 한일 정상회담을 잇달아 개최한 지 6년 7개월 만이다. 한미일 3국 정상이 포괄적인 성격의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전방위 도발 속 제7차 핵실험까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며 한미일 3국의 결집에 점차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이날 3국 정상 공동성명의 핵심은 한마디로 북한 도발에 대한 3각 공조의 재확인이었다. 3국 정상은 전례 없는 탄도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3국이 대북 제재와 관련해 “국제 간 간극을 좁혀 해당 제재조치들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대응 전략으론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꼽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역내 안보환경이 더욱 엄중해짐에 따라,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공약은 강력해질 뿐이라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이를 위한 명시적 이행 방법으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3국 정상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외교적인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도 열어뒀다.
이번 3국 정상 공동성명의 또 다른 특징은 국제질서를 흔들면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해 한층 더 분명한 반대와 견제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성명에는 “잔혹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전쟁에 대항해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의지를 확인” 등 러시아 침공에 대한 반대 입장이 담겼다. 러시아가 전세 전환을 위해 만지작거리는 ‘핵 위협’ 카드에 대한 규탄 의지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이 앞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 러시아를 향해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직접 비판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성명에 중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 의지도 과거보다 한층 더 강한 톤으로 담겼다.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강압적 활동”을 언급한 대목이 남중국해의 무인도와 수중 암초 매립을 통한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 센카쿠 열도 문제, 홍콩·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 문제 등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밝힌 것도 최근 대만 통일 의지를 피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보장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 △인도ㆍ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협력 등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중이 크게 반영됐다는 평가다.
특히 14일 예상되는 세기의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성명이라서 북중러 진영에 주는 메시지가 남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이번 순방을 통해 한미일 삼각 협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분위기”라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한 건 기존 입장에서 더 나아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3개국 정상이 안보 공조 등을 강화하기로 한 데 대해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신냉전 체제의 가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상황이나 미중 갈등 국면 속에서 한미일 3국은 공조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북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한데 갈등 상황을 고착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익을 지키려면 한쪽 진영에 치우쳐 상대 측과 지나치게 갈등하기보다는 외교적 유연성을 지켜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