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간담회 참석을 독려하려고 사내 방송실을 무단으로 점거했더라도, 정당한 쟁의행위로 볼 수 있다면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주거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윤정일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노조위원장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윤 전 위원장은 2016년 9월 22일 노조간부 7명과 공모해 경영 노무처 직원의 허가 없이 오전 11시 17분쯤 무단으로 철도시설공단 사내 방송실에 들어가 노조간담회에 참석하라고 독려하는 방송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윤 전 위원장은 방송을 하면서 관리 직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송실 출입문을 4, 5분간 잠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윤 전 위원장 일행의 행위가 위법하다며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청구했고, 윤 전 위원장은 정식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했다.
1심은 윤 전 위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윤 전 위원장의 행위가 정상적인 '쟁의행위' 범주에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쟁의행위는 노조가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행할 수 있는 회사 운영 저해행위를 뜻한다.
1심 재판부는 "점거 범위가 직장 사무실 시설 중 일부분이고, 윤 전 위원장이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방송실에서 사내 방송을 했던 입장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허가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방송하게 된 점 등을 고려하면 위법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은 윤 전 위원장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윤 전 위원장 등이 회사 측에 방송실을 이용하겠다고 사전에 고지했다고 볼 수 없어 방송실을 배타적으로 점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윤 전 위원장의 행위를 정당한 노조활동이라고 봤다. 외견상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그 목적과 주체를 고려하면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노조와 공단 사이 체결된 단체협약은 노조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내 방송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데, 공단이 임의로 이용권을 제한한 사실이 있는 점 △윤 전 위원장은 노사 관행에 따라 통상적 구두 사용신청·사용통지 등 절차를 거쳤다고 인식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점을 판단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수단과 방법의 적정성을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아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고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