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완 볼보 최고경영자(CEO)는 9일(현지시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왕의 정원에서 7인승 순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볼보 EX90'를 처음 공개한 뒤 한국 언론과 만나 볼보의 지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볼보의 고객은 가족을 안심하고 태울 수 있는 차량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며 "프리미엄의 기준은 얼마나 안전한가"라고 강조했다.
이날 첫선을 보인 EX90는 30개의 최첨단 센서와 차량에 내장된 코어 컴퓨팅, 그리고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량 안팎에 360도 안전 보호막을 만든다. 운전자의 주의력이 떨어지거나 졸면 경고를 하거나 갓길에 차를 대는가 하면, 차량에 아이를 두고 내리면 먼저 알아차리고 운전자에게 알린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고속 주행에서도 전방 250m에 보행자와 반경 120m에 있는 작은 물체를 감지해 사고 가능성을 눈에 띄게 줄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볼보는 95년의 브랜드 역사에서 최우선 가치로 지켜온 안전을 요즘 유행하는 '럭셔리'와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기자가 "볼보는 럭셔리 브랜드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하자 로완씨는 "럭셔리가 무엇인가? 테슬라는 럭셔리인가?"라고 되받았다. 지향점이 서로 다른 브랜드와 비교 대상이 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그는 "럭셔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며 '럭셔리 광장'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예로 들었다. 여기 '럭셔리'라는 광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포르셰는 퍼포먼스를 자랑하면서 등장하고, 메르세데스-벤츠는 편안한 주행감(comfort drive)을 뽐내며 들어오고, 테슬라는 기술을 앞세워 들어설 것이다. 로완씨는 "볼보는 안전과 지속가능성에 힘을 주며 들어갈 것"이라며 "럭셔리라는 개념은 브랜드마다 다르다"고 강조했다.
로완씨는 이어 "고객들이 볼보에 기대하는 '프리미엄'은 ①안전 ②지속가능성 ③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며 "고객이 무엇을 프리미엄으로 보는가에 따라 (공략하는) 시장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볼보 EX90의 안전 사양 중 로완씨가 가장 강조한 '라이다' 역시 안전을 위한 기술이다. 볼보의 연구에 따르면, 라이더를 통해 대형 사고 위험을 최대 20% 줄일 수 있고, 충돌 방지 효과는 최대 9%나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전기차 모델에 쓰인 새로운 주요 기능이 모두 '인간의 안전을 위한 기술'인 셈이다.
볼보가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시장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하는 소비자들이 이끌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로완씨는 "한국은 볼보에 이미 중요한 시장"이라며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기술 대신 인간 중심의 기술을 쓰는데, 한국 소비자들은 이 점을 매우 상세하게(sofisticated)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이슨 CEO로 일하던 중 한국을 방문해 이 같은 시장의 잠재력을 체감했다고 한다. 로완씨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다이슨의 CEO 및 이사회 멤버로 재직했다. 그는 "(당시 획기적 헤어드라이어) '에어랩'을 들고 한국에 갔는데, 한국 소비자들은 이 새로운 제품의 특장점을 아주 빠르게 이해했다"며 "단지 뽐내기 위한 기술과 일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꿰뚫어본다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EX90가 재생가능한 자재를 쓰는 것도 한국 소비자들은 의미 있게 평가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안전, 연결성, 인간 중심의 기술은 한국 시장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보 EX90엔 어느 배터리가 쓰일까.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인 중국 CATL 배터리가 들어가는지 묻는 질문엔 로완씨는 "우리는 어느 회사의 배터리를 쓴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CATL 등) 현재 배터리사 네 곳을 확보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공급사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국가 차량에 어느 배터리를 쓰는지 공개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볼보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올 볼보 EX90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들어갈 전망이다.
로완씨는 앞으로 자동차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대폰을 EX90의 '디지털 차키'로 활용하면 차량을 공유하기 쉽다"며 "만약 차키를 갖고 멀리 갔더라도 배우자에게 디지털 차키를 전송해줄 수 있고, 반대로 아들에게 이미 디지털 차키를 줬더라도 언제든 디지털키를 지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