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가 아니라 “살아…내고 싶어요. 다들 일상을 살아냈으면 좋겠어요.”
휠체어에 앉아 병원 환자복 소매를 만지작거리던 이모(27)씨가 고심 끝에 고른 단어는 ‘살아내다’였다. 1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중상자 10명 중 한 명이다(13일 오후 11시 기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히 얘기해달라고 하자, 이씨는 “살아내고 싶다”고 답했다. 사고를 딛고 일어서 소중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지난달 29일 핼러윈을 맞아 친구를 만나러, 3년 만에 돌아온 마스크 없는 축제를 즐기러, 재밌게 분장한 사람들을 구경하러 이태원을 찾았던 158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 도심 골목에서 사람더미에 짓눌려 숨진 '믿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났다.
한국일보는 참사 2주 후 생존자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몸과 마음 곳곳에 새겨진 참사의 고통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생존자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생존자 중에는 공포, 죄책감, 미안함, 무기력을 동시에 호소한 경우도 있었지만, 일상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이들도 있었다.
이씨에게 핼러윈은 대학 진학 후 만나기 힘들어진 고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그날도 친구들을 만나러 밤 9시 이태원으로 향했다. “인파에 쓸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과 떨어져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하는 골목에 있었어요. 세계음식문화거리 쪽에서 사람들이 쓸려 내려왔는데, 제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 가다보니 사람들이 쓰러져있었고 저도 사람들에 밀려 거기에 깔렸어요. 그때가 오후 10시 20분쯤이었어요.”
이번 참사에서 중상자로 분류된 그의 두 다리는 장시간 피가 통하지 않아 '횡문근융해증' 진단을 받았다. 사고 당시 여러 사람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이씨의 몸은 압착됐다. 다행히 내장 출혈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장기 손상이 심해 효소 수치가 높아지면서 일주일 내내 수액치료를 받았다.
그날의 기억을 어렵게 되살려보니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후 10시 20분쯤부터 경찰이랑 소방대원들이 온댔어요. 근데 인파 통제가 되지 않다보니 기다려도 빨리 진입을 못했어요.” 이씨가 어렵게 구조돼 구급차에 탄 시간은 오후 11시 31분. 차량으로 20분 거리 병원에 그는 1시간 뒤에 도착했다. “차가 꽉 막혀 나갈 수가 없었대요. 구급대원 전화를 받은 부모님이 저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어요.”
죄책감은 생존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 중 하나다. 특히 참사 직후,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다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괴로워하던 김모(32)씨는 심리치료사의 조언으로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다시 찾아 편지를 남겼다. 두 차례 절하고 헌화한 김씨는 마음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누구에게든 베풀며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게요.”
박기연(26)씨도 참사 당일 심폐소생술(CPR)을 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1주일 동안 힘들어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주변의 위로였다. 그는 “소방대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네 잘못이 아니다. 압사와 질식사는 비슷해보이지만 너무 달라서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을 거다. 네 몸 챙겨서 돌아온 게 잘한 거야’라고 말해줬는데 많은 위로가 됐다”며 “그럼에도 당시에 도움을 주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 번 새겨진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당시의 공포와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외면하기도 한다. 현장에 있었던 김일권(39)씨는 “아직까지 트라우마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면서도 “10월 29일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직장에서 일을 좀 더 시켜달라고 했다. 예전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여자친구는 매년 단풍놀이를 즐겨왔지만, 사고 현장과 사람들이 엉켜 있는 모습이 떠오를까 봐 밀집된 공간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이태원 참사 부상자를 190여 명으로 보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있어 집계되지 않는 부상자는 훨씬 더 많다. 일권씨 역시 중대본 부상자 통계에 잡히지 않아, 일반 치료비와 트라우마 상담 지원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장에 저희보다 위급한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 구급차가 아닌 택시로 응급실에 갔더니 부상자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며 “여자친구는 다리 근육이 파열돼 재활치료를 받고 있고 흉부 통증도 있지만,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복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에 간 것이 잘못이라며 희생자를 탓하는 폭력적 태도는 남겨진 이들이 아픔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린다. 심리치료 과정을 글로 남기고 있는 김씨는 당부했다. “‘놀다 죽은 거다. 스스로 죽게 만든 거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이태원은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입니다. 핼러윈 분장을 사진에 담는 걸 손꼽아 기다린 사람도 있고요. 이번 참사가 다양한 일상을 존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스윙댄스와 탭 댄스 등 춤을 취미로 삼았던 이씨에게 이태원 참사는 일상을 앗아갔다. 병실로 향하던 그는 휠체어를 잠시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다시 춤추고 싶어요. 친구들과 연례 행사였던 핼러윈도 언젠간 다시 즐길래요. 그런데 참사 수습과정을 보니, 이태원이 안전해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드네요. 사람들이 죄책감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 살아남은 우리가 아니라,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