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한국판 인태 전략', 美와 보조 맞추며 文정부 신남방정책 차별화

입력
2022.11.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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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첫 대면 앞두고 중국 자극 피해

11일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공개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중 격전지인 동남아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태 전략과 같은 명칭의 외교 전략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함의를 지닌다. 그간 중국을 의식해 미국의 인태 전략 참여를 유보해온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차별화하면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방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미중 격전지서 공개된 한국판 인태 전략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포용·신뢰·호혜 3대 협력 원칙을 제시했다.

한국이 인태 지역에 대한 자체 외교 전략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11일 아세안과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신남방정책을 선언했다. 당시엔 외교 다변화 전략 차원이었다. 그러면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을 의식해 미국의 인태 전략 편입에 거리를 뒀다. 역내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달리 윤 대통령은 동남아에서 인태 전략을 공개한 것만으로도 미국에 적극 호응한 셈이다.

美와 분명한 보조 속 中 배제에 거리두기

특히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유의미한 대목이다. 미국 등이 인태 지역에서 중국의 확장을 견제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양안(중국·대만) 갈등뿐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은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또 "중립성이 강한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을 확고하게 지지한다"며 역내 질서에서 중국을 전면 배제하는 움직임과 거리를 두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오는 14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처음 대면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아세안 연대 구상… 신남방정책 실천방안 추가

인태 전략의 핵심 실행 방안으로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제시했다. 아세안은 풍부한 핵심 광물, 원자재, 거대한 소비시장 등을 갖춰 중국을 제외하면 단일 경제권으로 우리나라의 제2의 교역상대인 만큼 경제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이에 윤 대통령은 오는 2024년 한·아세안 관계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것을 포함해 △한·아세안 외교당국 전략대화 활성화 △한·아세안 국방장관회의 정례화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 △전기차·배터리·디지털 분야 협력 등 전방위적 협력 강화 구상을 밝혔다. 한·아세안의 각종 협력기금도 올해 2,400만 달러에서 2027년까지 4,800만 달러로 2배 증액할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공략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실천 전략이 빠졌다는 지적이 많아 실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월 한미 정상회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9월 유엔총회 참석 등에 이어 윤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를 통해 새 정부 외교 기틀을 완성한 셈이 됐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의 외교 큰 줄기는 '동맹 외교', 자유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 '다자 외교'로 이어져 왔는데, 우리만의 인태 전략으로 지역 외교의 퍼즐을 맞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프놈펜=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