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서 '남북 무기 대리전' 현실화하나… 美에 탄약 수출

입력
2022.11.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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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산업체가 미국에 탄약을 수출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동이 난 미국의 탄약 재고량을 채우기 위해서다. 수출하는 무기는 자주포에 사용되는 155㎜ 곡사포탄 10만 발 규모로 국내업체 풍산에서 생산한다.

정부는 그간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차원에서 '비살상무기'만 지원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수출 협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국산 무기가 넘어갈 가능성은 부인했다.

국방부는 11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미국 내 부족해진 155㎜ 탄약 재고량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과 우리 업체 간 탄약 수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미국을 최종 사용자(End User)로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수출된 방산물자는 정부의 사전 서면 승인 없이 제3국이나 제3자에게 수출, 판매, 양도, 기타 처분할 수 없다’(방위사업관리규정 199조)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우리 정부가 허락하지 않으면 미국이 국산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군이 한국에서 탄약을 수입해 '밀어내기' 방식으로 기존 보유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우리 정부가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우회적으로 간접 지원하는 모양새가 된다.

더구나 탄약은 전차나 자주포와 같이 눈에 띄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최종 사용처 확인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산 포탄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직접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탄 10만 발은 포병부대가 수주에 걸쳐 전투를 치르기에 충분한 양이다. 국산 155㎜ 곡사포탄 사거리는 최대 30㎞에 달한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인 만큼 우크라이나에서 남북 무기가 맞붙는 '대리전'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앞서 2일(현지시간)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상당한 양의 포탄을 은닉해 제공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나 탄약을 수출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반발했다. 외교부는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거래 정황에 대해 우려를 갖고 주요 우방국과 긴밀히 소통하는 한편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모든 무기거래는 2006년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에 따라 금지돼 있다.

이처럼 논란의 한복판에 한국이 연루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지원하면 양국 관계는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의식해 우크라이나에 방독면, 방탄헬멧, 모포, 전투식량, 의약품 등 비살상용 물품만 지원해 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이달 초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을 만나 한국의 155㎜ 포탄 10만 발을 미국에 수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이 전달되는 것에 대해서도 양측이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155㎜ 곡사포 142문, 포탄 92만4,000발을 지원했거나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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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