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이례적 압수수색 영장'을 두고 검찰과 정치권에서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통상의 영장과 비교해 분량이 방대하고 혐의 내용도 공소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지난 9일 정 실장의 자택과 민주당사 등을 압수수색하며 30쪽(압수목록 등 기재 별지 제외)에 달하는 영장을 제시했다. 영장에는 정 실장을 중심으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및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의 유착 과정이 상세히 담겼다. 또 정 실장의 범죄사실 요지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부정처사후수뢰·부패방지법 위반·증거인멸교사 등 4가지 혐의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법조계에선 정 실장의 압수수색 영장이 양적으로나 내용 측면에서 이례적이란 평가를 내린다. 30쪽에 걸쳐 상세히 범죄사실과 혐의를 적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압수수색 영장은 처분 당사자에게 사본을 반드시 교부하도록 돼 있어, 많은 정보가 담길수록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 상황이 피의자는 물론이고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 영장은 자세히 작성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안팎에선 수사팀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을 내보인 것으로도 해석한다. 특수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사실관계는 피의자가 사실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며 "검찰이 '이만큼 알고 있다'고 상대에게 알림으로써 '이 정도면 인정하라'고 유도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의도는 범죄사실과 관련없는 정 실장의 과거사를 영장에 적시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은 '김철호'란 가명으로 경성대 총학생회 노동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정 실장의 행적을 영장 첫머리에 상세히 담았다. 정 실장은 1990~1991년 전대협이 주최하는 폭력시위에 참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학생회관에 숨어 도피하다 검거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검찰은 '1995년경 전대협 출신 운동권 인사들이 다수 활동하는 성남지역에서 시민단체인 성남시민모임 활동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당시 성남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재명을 알게 돼 친분을 쌓았다'고 적시했다. 범행 전력은 법원 판단에 필요한 요소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물론이고 공소장에도 이토록 세밀히 기재한 경우는 드물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형을 산 것도 아니고 기소유예 사건이지 않나"라며 "언론을 의식해 피의자의 성향을 강조함으로써 여론전에서 동력을 얻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 실장 측에 전달되는 압수수색 영장이 외부로 유출될 것까지 내다보고 의도적으로 기재했다는 것이다.
방대한 분량과 상세한 내용에도 불구, 영장의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유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등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실장 측은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 실장을 상대로 검찰이 청구한 체포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 4개월간 전면적 재수사를 통해 관련자 진술과 녹취록 등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한 내용으로 한두 사람의 진술에 의한 게 아니다"라며 "압수수색 영장 역시 혐의 소명이 이루어져 발부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남 변호사와 유 전 본부장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을 검찰이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