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넘칠 때 새 말이 생긴다

입력
2022.11.13 22:00
27면

갑작스런 참사나 비극을 마주하면 우리는 놀라고 두렵고 괴로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여유 없는 마음이 황폐해진다. 또한 터무니없다는 느낌마저 들고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럴 때 많이 쓰는 말이 '황망'인데, 황망(慌忙)은 원뜻이 '마음이 몹시 급하여 당황하고 허둥지둥하는 면이 있음'이라서 '황망한 죽음, 황망한 마음'은 올바르지 않은 용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지적에 따르면 ‘황망한 유족’도 비탄이나 애통 같은 커다란 슬픔을 나타내는 경우는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상중에 경황없는 유족의 마음 상태라면 '황망하다'도 원뜻에 맞을 텐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 '황망'은 '황량'과 '허망'의 뜻이 합쳐졌다고 볼 수도 있다.

황망(慌忙)의 원뜻 '급하고 당황하고 허둥지둥'과 그 유의어 '경황, 당황'에는 꼭 슬픔이 들어가지는 않으나, 슬픔이 너무 크면 그런 상태가 되기도 한다. 1990년대까지도 '황망'의 원뜻이 적당히 많이 쓰였는데, 비극이나 죽음을 마주한 감정 상태를 일컫는 '황량+허망'의 '황망'은 이미 1970년대부터도 보인다. 현재의 의미는 1990년대부터 그 쓰임이 늘어 이제 오히려 원뜻을 앞서는 듯하다. 언어가 변한다는 당연한 원리를 차치하더라도, 감정이 북받칠 때 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빠듯하기에 '슬픔'과 '정신없음'은 의미상 관계가 깊고 의미의 이동도 전혀 황당하지 않다. '황망'은 아래처럼 발음과 의미가 인접하는 여러 말이 뒤섞인 것으로도 간주할 만하다.

경황(景況)없다: 몹시 괴롭거나 바쁘거나 하여 다른 일을 생각할 겨를이나 흥미가 전혀 없다.

경황(驚惶):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함.

당황(唐慌/唐惶):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

황당(荒唐)하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 유의어: 거짓되다 기막히다 어이없다.

황량(荒涼)하다: 황폐하여 거칠고 쓸쓸하다. 유의어: 거칠다 메마르다 쓸쓸하다.

허망(虛妄): 거짓되고 망령됨, 어이없고 허무함.

황망(慌忙)은 황량(荒涼)이나 허망(虛妄)과 한자 구성이 다르다. 그런데 각 글자는 형성자로 요소가 같고 발음과 의미에서도 연결 고리가 있다. 황(慌: 어리둥절하다, 허겁지겁하다, 다급하다, 겁나다, 잃다), 망(忙: 바쁘다, 어수선하다, 초조하다, 애타다), 황(荒: 거칠다, 삭막하다, 터무니없다), 망(妄: 망령되다, 정신이 흐리다, 헛되다). 慌, 忙, 荒, 妄에는 모두 망할 망亡이 들어가며, 亡은 잃을 상(喪) 및 거칠 황(荒)과 어원이 같다. 따라서 황량(荒涼)+허망(虛妄)의 황망(荒妄)으로 풀이한다면, 언어 변화의 원리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지만 각 글자의 어원이나 의미 영역으로 봐도 들어맞는다.

국어사전에는 황망(荒妄)이 없는데 새로 싣든가 기존의 황망(慌忙)에 뜻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이와 한자가 같은 일본어 荒妄[고보]는 드물게 쓰는 말로 '거짓말'을 뜻한다. 비통하면 현실이 거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음에도 감정을 일컫는 말도 꾸준히 새로 생겨난다. 새롭다고 다 좋진 않지만 마냥 깐깐하게 내치기보다는 너그러이 품는 마음가짐도 있어야겠다. 슬프면서도 화날 때가 있듯 감정은 자주 복합적이고 차츰 누그러지다가도 이내 울컥하듯 너울진다. 그래서 비록 완전히 언어에 담기는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감정들의 모습을 새로이 세심히 포착하고자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낸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