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아(34·가명), 이현정(35·가명)씨는 현재 비혼이며, 향후 결혼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이들은 아이를 갖고 싶다. 결혼이야 50, 60세에도 가능하겠지만, 아이는 지금이 아니면 갖기 어려울 것 같아 절박하다.
윤아씨는 말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사랑이 부족했다고 느낀 적 없어요." 그 사랑을 자신의 아이에게 주고 싶지만, 보조생식술(인공수정 및 시험관 시술)을 이용한 비혼 출산은 여전히 가로막혀 있다. 법도 아닌,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지침으로 전국 산부인과 병원들이 이들의 '출산권'을 막고 있어서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씨가 비혼 상태에서 출산(2020년 11월 4일), 비혼 출산권이 뜨거운 관심을 받은 지 2년이 됐다. 하지만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윤아씨와 현정씨는 사유리씨의 사례가 알려지기 전부터 병원을 찾았고, 비혼 대상 시술이 불법이 아니라는 설명자료까지 만들어 의료진을 설득해 봤지만 허사였다. 변호사이기도 한 두 사람뿐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10명 안팎의 비혼 여성들은 병원과 국회 등의 문을 두드리며 꾸준히 비혼 출산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회의 지침으로 국민의 기본권인 재생산권과 자기 결정권이 제한당한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때를 놓치면 이대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될 것 같아 두렵다"라면서 관련 지침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_비혼 출산을 위해 난임 전문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료진의 반응은.
이현정(이하 이)=평생 결혼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봤더니 난소 나이가 40대 중반이라더라. 당장 아이를 가지지 않으면 낳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열 군데가 넘는 난임 전문 병원을 찾았지만, 모든 의사가 '결혼 안 한 사람한테 시술하는 건 불법'이라고 말했다. 사유리씨 사례가 알려진 후 일본에도 연락해 봤다. 일본도 정확한 법적 규정이 없고, 외국인의 신분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시술을 한다는 위험 때문에 실천하진 못했다.
노윤아(이하 노)= 문제는 불법이 아닌데 불법이라 알고 있다는 거다. 이를 설명하려 자료를 만들어서 가기도 했지만 태도가 바뀌진 않더라. 법보다 막강한 학회 지침인 셈이다.
이= '사실혼 확인 보증서'를 구해오면 시험관 시술을 해 주겠다는 병원도 있었다. 불법이 아닌 시술은 해 주지 않으면서, 허위 사실을 꾸며내라고 부추기는 건가. 결국 난자 냉동을 했는데, 나이 탓에 난자가 3개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또 얼려놓은 난자를 나중에 전부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못 가질 수 있는 굉장히 절박한 시기인데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건만 의사의 판단으로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느꼈다.
_비혼 출산의 경우 정자 기증은 어떻게 받나.
노= 현행법상 정자를 무상으로 기증받는 일은 불법이 아니다. 유상으로 제공받는다면 생명윤리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을 해 주지 않으니까 당연히 정자은행을 통한 기증도 어렵다. 이 문제는 시술이 가능해지면 함께 해결되리라 본다.
학회의 입장은 확고하다. 박중신 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10월 6일 국정감사에서 "인권위 지침 개정 권고를 받고 검토했는데, 모자보건법 제2조(정의)를 보면 난임이란 부부, 사실상 혼인관계를 포함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지침을 개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지침으로 비혼 출산을 거부당한 분들이 저희를 많이 찾아오셨다"며 "복지부에서도 법에 의해 가능하다는데 학회의 지침은 월권"이라고 지적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실제 보건복지부조차 이날 "생명윤리법에서 금지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두 사람은 학회의 설명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_학회에서는 모자보건법 개정이 우선이라고 했다.
이= 모자보건법에서의 난임 정의는 시술비 등 지원 대상을 정하려 개념을 규정해둔 것이다. 체외수정 시술 대상을 제한하는 법이 아니다. 2019년 법 개정 이전까지 사실혼 부부는 난임 개념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난임 병원은 사실혼 부부에 시험관 시술을 해 왔다. 사실혼 부부는 모자보건법으로 난임 시술 지원 혜택을 못 받은 것이지, 난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시술을 거부당하진 않았다.
노= 학회 지침에 사실혼 부부가 부부 개념으로 포함된 시점은 지난해다. 이보다 앞선 2020년에만 1,993쌍의 사실혼 부부가 시험관 시술 지원 결정 통지를 받았다. 학회의 답변은 핑계다. 지침을 개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법률로 명문화해서 제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학회에서 지침을 '사회의 합의'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야말로 법적으로나 사회적 통념으로나 허용될 수 없는 부분 아닌가.
이= 답답하다. 정말 법으로 금지됐다면 개정하면 되는데, 그것도 아닌 상황이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사실 '지침 때문에 못 한다'도 아니고 그냥 못 해 준다는 식이다. 명확히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싸우는 기분이다.
더구나 국내에서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은 우호적이다. 지난해 서울시민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71.0%가 비혼 출산에 동의(대체로 동의 58.7%·매우 동의 12.3%)한다고 답했다. 같은 해 6월 여성가족부의 국민인식 조사에서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절반이 넘는 50.6%가 찬성했다. 특히 여성은 10명 중 7명(68.9%)이 긍정적이었고, 서울 거주 비혼여성 4명 중 1명꼴(26.2%)로 비혼 출산을 생각해 본 적 있었다. 비혼 출산을 하려는 두 사람이 '독특하고 드문' 사례는 아닌 셈이다.
_비혼 출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노= '결혼을 하지 않겠구나'라고 깨달은 시점부터 계속 관심이 있었다. 신체적 측면에서 임신 적령기가 35세 이전이라고 한다. 30대가 되면서부터 아이를 가질 방법을 고민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이성과의 성관계로 임신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_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이= 연애도 많이 해 봤지만, 평생 함께 살면서 이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아이를 가질 목적으로 같이 사는 게 쉬운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사랑하면서 둘이 사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
노= 주변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부담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만약 결혼하고 싶대도 바로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일정 기간 연애하면서 이 사람과 정말 평생을 약속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심지어 만나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몇 년 안에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데 아이는 지금 갖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갖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혼외 출생 자녀 비율은 2.3%(2019년 기준). 이는 세계에서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프랑스(60.4%)나 스웨덴(54.5%), 영국(48.4%)은 비혼 출산이 전체 출산의 절반에 달한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한국의 유례없는 저출생의 원인으로 '혼외자를 단념시키는 보수적 사회 규범'을 들었다. PIIE는 저출생 해결을 위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로 '혼외자 또는 비전통적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에 대해 남아 있는 법적 차별의 즉시 중단'을 제안하기도 했다.
남 의원 역시 국감에서 "혼인을 통한 출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주요한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며 "이 주제에 대해서 의원실로 많은 의견이 들어와서 오늘 질의를 대신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비혼 청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경직된 틀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다는 것은 한번 고민을 해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윤아씨와 현정씨를 포함해 10여 명의 여성들이 국감 전, 남 의원실을 찾았다.
_비혼 출산의 출생률 기여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노= 우리나라가 저출생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걸 보면 약간 우습다. 이렇게 아이를 낳겠다는 의지가 강력한 사람들이 많은데 못 낳는 현실과 모순되게 느껴진다. 비혼 의지가 강력한 경우뿐 아니라 단순히 혼인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에도 혼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하는 시기에 임신·출산할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
_비혼 가정에서 태어날 아이의 권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이= 우리나라 한부모 가정이 150만 가구가 넘는다.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정'이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사실 나중에 아이가 의문을 가질 수 있기에 고민이 없던 건 아니다. 비혼 출산은 깊은 고민 끝에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나. 더 큰 책임감으로 아이를 사랑할 준비가 된 상태에서 낳은 만큼 남들보다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노= 저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점 때문에 불행하다거나 사랑이 부족했다고 느낀 적 없다. 불행했던 순간은 '한부모 가정이라니 불쌍하다'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있을 때였다. 부모가 한 명인가 두 명인가보다는 자녀를 지지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중요하다. 주변에서도 비혼 출산을 하고 싶다고 하면 아이의 행복은 생각해 봤느냐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도 결국 아이의 행복을 좌우하는 건 부모의 수가 아니라 사회의 시선이라는 생각에는 다들 동의하더라.
인터뷰를 마치며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윤아씨는 "주말이면 계란 올린 김치볶음밥을 함께 만들고 영화도 보는", 평범한 가정의 풍경을 이야기 했다. 현정씨는 요새는 보기 드문 버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버선이 겉으로 보면 완벽한데 뒤집어 보면 시접이 삐뚤빼뚤하듯이 가정마다 남들은 모르는 사정이나 스토리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버선 겉모습처럼 완벽한 가정은 못 만들더라도 소소한 이야기와 추억이 있고, '우리 집'을 떠올리면 완벽하진 않아도 안전하게 느끼는 그런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고,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세상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 가정을 향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