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수많은 기업의 도산과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넘쳐 났고, 그에 따라 위기를 맞는 가정의 수도 늘어났다.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길에 올랐던 젊은이들은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대학 졸업자들은 취업의 단꿈을 포기해야 했다. 졸업하면 취직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암묵적인 사회통념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시대는 그렇게 젊은 우리를 좌절시켰지만, 공동체로서 함께 겪는 큰 시련 앞에서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다 같은 한 존재임을 우리는 그때 경험으로 배웠다.
국가적 위기에서 탈출하자마자 우리는 집단적 열광에 취하는 흥겨운 체험도 함께 한 바 있다. 외환위기 속 IMF체제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6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월드컵은 모처럼 전 국민이 함께한 감동적인 집단적 체험이었다. 직전에 경험한 어둠이 너무 짙었던 까닭일까. 월드컵을 계기 삼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열정은 맹렬하였고, 온 국민이 일체가 된 응원의 열기는 엄청난 에너지로 분출되었다. 모두가 들떠 있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으며, 그 열기에 취해 이제 이 나라에 마침내 새로운 천년의 서광이 비치는 것이라 여기며 낙관적인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마치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심하라고 경고라도 하듯, 크고 작은 재난들이 연이어 터졌다. 특히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사건일 것이다. 사건 발생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의 회피와 침묵, 그리고 초기 대응과 문제해결 과정에서 허점을 드러낸 정부에 대한 여론의 비난에도,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로 시간만 흘렀다. 결국 우리의 선조들처럼 국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뒤에야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되는 오랜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2007년 태안으로 달려가 기름을 닦아내던 국민의 마음은 이듬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 협상과 관련해서는 거대한 촛불시위로 표현되었다. 늘 그렇듯 괴담과 정치 선동으로 집회의 진정성이 오염되기도 했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어 올려 의지를 표명한 민심을 헤아리고자 애써야 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고, 최근 이태원 참사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도외시할 때 민심은 거세어지며, 그 성난 민심은 21세기인 오늘날 촛불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실망한 민심은 통제와 억압을 받은 만큼 더욱 에너지를 응축하여 거대한 시민운동으로까지 이어짐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융에 따르면, 개인의 인격이 수용받지 못하고 통합되지 못하는 정신적 위기에는 그러한 개인이 모여 있는 전체로서의 시대정신에도 모종의 두려움과 불안, 원(怨)과 한(恨)이 상징적 사건으로 드러난다. 다원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영위되는 원만한 시대에는 민심의 저변에 저항의 욕구가 일지 않지만, 규범적이고 교조적이며 권위적인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기실현만이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 또한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퇴보하며 언제라도 튀어 오를 채비를 하기에 악재가 끊이지 않는 법이라고 말이다. 과연 우리 세대가 젊은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는,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나라를 물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