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주가 됐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참사가 남긴 상처는 치유는커녕 여기저기서 덧나고 있다. 경제대국, 문화콘텐츠강국, 방역선진국에 산다는 자부심은 믿기지 않는 대규모 압사 참사에 속절없이 추락했다.
대규모 참사가 빚어진 원인과 책임을 되짚어가는 과정은 늘 그랬듯 지난하고 아프다. 화려한 발전 뒤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이면이 얼마나 허술하고 어두웠는지 하나둘씩 드러나는 내내 부끄러움과 분노를 곱씹어야 했다. 필연적으로 정치가 파고들었고, 결국 참사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의 외침이 위로와 반성의 목소리를 가리기 시작했다.
멀게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가까이는 세월호 침몰을 겪고도 또 대형 인명사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그렇게나 많은 사고가 있었는데도 한국의 공공 안전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외신들의 따끔한 지적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앞으로 달라질 순 있을까.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에서 만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원인을 ‘소통과 학습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30년 넘게 재난과 위험의 사회학을 연구해온 그는 “이번에도 비난만 하고 끝나면 같은 일이 또 반복된다”고 경고했다. 관료 사회가 치부를 온전히 드러내 변모해야 하고, 고위급 참모들이 위험 대비 전략을 총괄하는 브레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지난달 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접한 순간, 위험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직감적으로 ‘소통의 실패’일 거라고 느꼈다. 재난은 대부분 사전에 예견되지 못한 채 출현하는 속성을 갖는다. 경찰이나 구청의 현장 인력들은 핼러윈 행사처럼 자연발생적으로 군중이 밀집할 때 그렇게까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사전에 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모이는지를 오랫동안 봐온 경험 많고 책임 있는 관리자가 전체 시스템 내에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 행동을 취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막혔다. 위험 신호들이 곳곳에서 계속 답지할 때 제때 파악하고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안 됐거나 무시됐다. 이벤트 안전 관리 체계의 소통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에선 이런 경우에 대비해 정부가 사람들이 몰리는 행사 때 꼭 점검해야 할 목록을 매뉴얼로까지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해 놓는다. 경찰, 구청 인력이 아니어도 행사를 조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다. 매뉴얼을 이용해 교통과 밀집도 관리 방법을 확인하는 건 물론이고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음식을 먹는지, 불꽃놀이 같은 특수효과가 있는지, 놀이 활동을 하는지 등에 따라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며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와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든다면.
“소통의 실패로 빚어졌다는 점, 정치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태원과 세월호 사고를 보며 사람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한 주된 이유는 책임 없는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갈등이 촉발되고 위험이 정치화한다. 이는 한국 특유의 유교적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세상만사도 인간관계도 옳은 이치에 따라야 하는데, 재난은 옳은 이치가 깨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기고, 정치도 책임자에 대한 비난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전형적인 ‘숙성형’ 사고다. 배가 도입돼서 운행될 때까지 수년 동안 많은 위험 요소들이 발견되지 못한 채 축적됐다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안전점검, 구조변경, 과적출항 등 여러 단계에서 안전을 위한 규제나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다. 숙성형 사고는 규제를 운영하는 조직의 실패이기도 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마포 가스폭발, 서해훼리호 침몰 등 1990년대에 유독 숙성형 사고가 많았다.”
-세월호 침몰이 숙성형 사고라면, 이태원 참사의 특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이태원 참사는 숙성형 사고의 측면도 있지만 ‘돌발형’ 사고이기도 하다. 여기에 ‘복잡계적’ 특성이 합쳐졌다. 합법적이고 제도화한 축제의 공간이 부족했던 젊은이들에게 핼러윈은 억눌렸던 에너지를 풀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질감을 줬다. 유럽의 밀 문화가 개인 노동 중심으로 발전해온 것과 달리 아시아의 벼 문화는 집단 노동 위주였다. 그래서 감정과 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한국은 교통망도 매우 발달해 있다. ‘좁은 세상’을 만드는 문화적, 기술적 배경이 기대감을 공유하며 끓어오른 젊은이들이 일거에 집단으로 모일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청둥오리나 기러기 떼는 수만 마리씩 이동해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간단한 원리에 따라 확보한 거리 유지 감각이 내재돼 있어 집합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특별히 훈련받지 않으면 그런 움직임이 불가능하니, 밀집이 과해지면 위기 상황이 생기게 된다. 마치 액체와도 같이 밀려가던 개인들이 임계점을 넘는 밀도로 밀착되면 고체처럼 변하고, 이때 받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단, 이런 문제를 사전에 인식하기만 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한강 불꽃놀이나 광화문 집회에도 사람들이 밀집했는데 이태원처럼 사고가 생기지 않은 이유다. 반면 이번 핼러윈 때는 개인들이 뒤늦게 위험을 알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신고가 갔는데도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사각지대가 됐다.”
-외신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정부가 공공 안전 체계를 충분히 갖췄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로 분명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이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문제 해결법을 학습하는 방식을 사회학에선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내부화'를 통해 해결하는 ‘단일 순환 학습(싱글 루프 러닝)’이다. 내부 누구의 책임이냐부터 따져서 빨리 벌을 주고 빨리 사표를 받는 식이다. 그리곤 내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간판을 바꾸는 방식으로 변화를 보여주려 한다.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결심들도 내놓는다. 그러나 이건 제대로 된 학습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응이 대표적인 단일 순환 학습 사례다. 당시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만들고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는 등 내부 중심의 해결에 주력했다. 그렇게 끝내 버리니 달라지는 게 없다.”
-그럼 실패로부터 뭘 어떻게 학습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내부화가 아니라 ‘외부화’로 접근해야 한다. 그게 사회학에서 설명하는 ‘이중 순환 학습(더블 루프 러닝)’이다. 핵심은 문제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외부에, 특히 전문가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실수를 낱낱이 드러내고 어디가 문제였는지를 객관적으로 짚어야 한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이후 보건당국이 외부 전문가를 불러들여 대응 과정 하나하나 다 공개하고 점검해가며 백서를 만들었다. 그 경험이 코로나19 대응에 큰 도움이 됐다. 실패에서 배운 것이다. 외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보를 내놓으면 공격받으니 자꾸 덮으려 하고, 그럴수록 정치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리스크(위험) 관리’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사람들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할 때 리스크 총량과 변화 추세를 가늠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리스크가 뭔지, 정부가 기준을 만들고 대비해야 하는 리스크와 민간에 맡겨야 하는 리스크가 뭔지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위험 관리 조직은 대증적이다. 화재, 범죄, 가스, 전기 등 각 위험 요소별로 대응 조직이 따로따로다. 각 조직의 실무자들은 자기가 담당한 일만 하려 하고, 규정대로만 판단하려 한다. 리스크 전체를 보는 브레인이 없으니 겹치는 부분, 비는 부분이 생긴다. 이태원 참사가 바로 그렇게 생긴 사각지대에서 일어났다.
행정조직론의 시조라 불리는 프랑스 학자 헨리 페이욜이 제시한 조직 운영의 원칙 중 하나가 실행과 스태프(참모) 기능의 구분이다. 우리로 치면 정부의 각 부처는 실행을,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은 스태프를 맡아야 한다. 리스크 사각지대를 채우고 전체를 아우르는 대응 전략을 책임지는 스태프 기능이 현재 부족하다. 다른 재난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국가기간산업 시설인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일부 침수됐다. 스태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지금쯤은 아예 고로까지 물에 잠기는 상황에 대비한 계획을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 카카오 먹통 사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의 일상이 마비되는 만큼 네트워크 도미노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한 데 대해 결국 사과했다. 공직자의 발언이 시민들 생각과 한참 동떨어져 있어 답답할 때가 많다.
“늘 규정대로만 판단하는 법률가들의 바이어스(편향)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엔 주최자가 없고 신고도 안 돼 있는 행사라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사건으로 여겼을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학습해야 하는 건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다. 명시적인 주최자가 없어도 초연결사회에선 감정이 확산되고 정보가 전파되며 개인들이 모인다. 그렇게 모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나 밀도가 될 수 있다. 이런 복잡계적 현상이 현실에선 얼마든지 나타난다.
다행히 우리에겐 기술이 있다. 지하철 타는 인원을 셀 수 있고, 주요 장소마다 군중 밀도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혁신적 방법으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정부의 스태프 기능이 맡아야 할 일이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허망하게 숨지는 사고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세월호, 이태원 같은 대형 참사가 계속되는 것과 산업재해가 이어지는 현상이 관계가 있을까.
“산업재해도 결국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는 늘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논리가 작동한다. 안전을 챙기면 비용이 많이 들기에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한 노동자가 현장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해보자. 한쪽에선 일을 빨리 하라는 압력을 주고, 다른 한쪽에선 안전을 챙겨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결정적인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조직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노동자의 결정에 조직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산업 현장의 안전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다. 많은 산업재해가 알려지지 않고 은폐되는 것도 시스템에 있는 잘못된 규제 때문이다. 결국 이태원 같은 참사도 산업재해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시스템을 열고 바꿔야 한다. 물론 결정적인 실수와 잘못을 처벌하는 건 당연하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보나. 사회적 재난을 막으려면 시민들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공공성이 특히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주요 33개국의 공공성을 비교한 조사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꼴찌로 평가받았다. 시스템이나 제도가 얼마나 공익성과 분배적 정의에 걸맞게 설계돼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사회 서비스에 실제로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 시민들이 제도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바꿔 나가는 역할을 하는지, 사회적 규칙이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돼 있는지의 네 가지 측면을 비교했는데, 모두 최하위였다. 그렇게 공공의 안전에도 소홀했던 결과가 이태원 참사를 빚어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엔 재난적 유대감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대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산 때 쏟아진 도움의 손길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심폐소생술에 나섰던 시민들이 재난적 유대감을 확인시켜줬다. 쉬운 비난에 참여하기보다 재난적 유대감을 업그레이드해 사회의 공공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시민 각자가 시스템의 불완전과 취약성을 목격했을 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부에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피드백을 주저하지 말자. 시민들이 늘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 역할을 해야 사회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