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당한 여군·가족 잃은 남자, 우정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입력
2022.11.12 10:30
19면
애플TV플러스 영화 '더 브릿지'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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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제니퍼 로런스)는 미군이다. 폭발사고 부상을 입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막 귀국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던 그는 재활을 거쳐 뉴올리언스 집으로 돌아간다. 린지에게 집은 떠나고 싶은 곳이다. 아픈 기억만 남아 있어서다. 군입대를 한 이유도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파병되고 싶으나 몸이 아직 온전치 않다.

①반겨주는 이 딱히 없는 고향

홀어머니가 린지를 반기나 뜨겁지는 않다. 린지보다 남자친구에게 더 마음이 가 있다. 린지는 군복을 다시 입기 전까지 수영장 청소 일을 하며 돈을 벌려고 한다. 고향엔 아는 이가 딱히 없다. 고교 친구들은 각자의 꿈을 좇아 또는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났다. 우연히 알게 된 자동차 정비공 제임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가 괜찮은 말동무가 돼 준다.

린지와 제임스는 가까워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둘은 닮은꼴 상처를 안고 있다. 린지는 오빠가 하나 있으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마약 범죄로 중형을 언도받았다. 제임스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고, 여동생과는 절연했다. 린지는 뇌 손상으로 고통 받고 있고 제임스는 다리 하나가 없다. 마음과 몸 모두 심하게 다쳤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둘은 서로를 연민하고 금세 마음을 넓게 연다.


②사랑과 우정 사이 남녀의 교류

영화는 잘 드러내지 않으나 린지와 제임스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있다. 린지는 가난한 백인이고, 제임스는 경제적 여유가 제법 있는 흑인이다. 뉴올리언스는 인종 차별의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둘이 함께 술을 마실 때 백인 남자가 무례하게 끼어든다.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데이트를 할 리는 없다는 듯이.

린지와 제임스의 우정은 사랑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있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밀쳐 낼 수 없다. 당장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다. 특히 린지는 고향을 고향답게 만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하다.

③누구에게나 ‘집’이 필요하다

린지와 제임스 사이는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다(제임스는 잠깐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는 한다). 둘 사이엔 단정할 수 없는 온기가 흐른다. 애틋한 감정이 둘 사이 온도를 높인다. 뜨거운 사랑이나 의리 충만한 우정이 화면을 채우지는 않으나 상영시간 내내 보는 이의 마음을 휘젓는다. 상처 입은 두 남녀를 사랑으로 맺어 주지 않고도 고독과 측은, 연대, 인간애 등 다양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 영화의 미덕이다.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다. 린지의 절실한 한마디는 고향이란 무엇인지, 집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건지, 교감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뷰+포인트
영화 원제는 ‘Causeway’이다. 뉴올리언스 북단 폰차트레인 호수를 가로지르는 대교를 가리킨다. 린지와 제임스의 교유를 다리(Bridge)에 비유한 셈이다. 영화는 제니퍼 로런스의 연기만으로도 빛난다. 린지가 달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얼굴을 구기며 울음을 터뜨릴 때 관객의 마음에도 그늘이 드리운다. 23세 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연기 재능은 여전하다.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의 연기 역시 마음을 두드린다. 연극 연출가 출신 리라 노이거바우어의 감독 데뷔작이다. 인물들의 감정을 세세히 묘사해내는 솜씨가 신인답지 않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5%, 관객 78%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