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을 가장 강하게 질책하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뇌부 수사가 본격화하자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 점점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행정안전부 등 상급기관의 과실도 분명히 있는데, 왜 경찰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하느냐는 비판이다.
9일 경찰 내부망엔 “기승전 경찰이냐”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경찰에만 독박을 씌우려 한다”는 등의 불만 글이 쏟아졌다. 올해 8월 인사 번복 사태와 경찰국 출범 논란 때도 대통령과 장관이 경찰만 몰아세웠던 걸 꼬집은 것이다.
경찰만 참사의 원흉 취급하는 여론에도 섭섭함을 드러냈다. 경찰관 A씨는 “세월호 때 기동대 가서 고생하고 (중략) 현장에서 피 흘리며 실려 가는 동료를 보면서도 사명감 하나로 버텼는데, 이태원 참사 후 모두 우리를 손가락질하는 상황이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 일선서 과장은 “책임이 적지 않은 용산구는 경찰 뒤에 완전히 숨어버렸다. 사퇴로 책임을 진다면 경찰청장이 아닌 선출직ㆍ임명직 공무원들부터 물러나야 할 것”이라며 이 장관을 겨냥했다.
대통령실의 졸속 용산 이전이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경찰관 B씨는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굳이 대통령실을 옮겨 용산서가 경호ㆍ경비 인력을 동원하게 됐고, 진보ㆍ보수단체의 집회도 용산서 관내에 집중돼 핼러윈에 파견할 인력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B씨는 “어쩌면 본인이 가장 큰 원흉임에도 대통령은 경찰 단계에서 책임 소재를 꼬리 자르기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참사 장소를 관할하는 이태원파출소에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의견 역시 많았다. 한 지구대 팀장은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나 뼈아픈 비판은 당연하지만, 현장 경찰관들이 게을러 일어난 사고는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경찰 지휘부의 무능과 보고 체계 난맥상이 까발려진 만큼 대외적으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간부급 경찰관 C씨는 “솔직히 지금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씁쓸해했다. 서울 지구대 경찰관 D씨도 “요즘은 근무할 때 TV 뉴스도 크게 틀어놓지 않을 정도로 사기가 떨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