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최고책임자 자리에 있는 그는 검사 시절 돈 얘기를 입버릇처럼 꺼냈다. “수사는 돈이야.” 처음엔 돈이 있어야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건가 싶어 눈을 말똥거렸다. “권력형 비위든, 기업 비리든, 선거 범죄든, 돈이 오간 걸 밝혀내는 게 수사의 핵심”이란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그는 집요하게 돈을 좇았던 것 같다. 누가 돈을 줬는지, 누가 돈을 받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돈을 주고받았는지, 공소장에 꼼꼼하게 담았다.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던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을 맡으면서조차 그는 말했다. “잘 알잖아, 중요한 건 돈이야.” 결과는? 다들 알고 있는 그대로다.
1년 넘게 지루하게 이어지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수사에서도 돈 냄새는 독하기만 하다. 사업을 주도했던 김만배씨 등 대장동 일당, 이들에게 돈을 받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기소됐던 ‘시즌 1’과 단순 비교해도, ‘시즌 2’에서의 돈 냄새는 더욱 구리다. 성남의 개발 토착세력 처벌에서 멈췄던 수사가 종으로 횡으로 광범위하게 흘러나간 돈의 흐름을 쫓으면서 다시 춤을 추고 있다.
시즌 2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팔 다리를 그린 다음엔 자연스레 머리를 그리게 되는 법. 이미 기소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압수수색까지 마친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다음 타깃은 이 대표일 수밖에 없다.
실제 김 부원장 공소장에는 이 대표의 이름이 수십 차례 언급돼 있다고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마냥 대장동 일당들도 이 대표 측을 겨냥한 진술을 쏟아내고 있다. “이 대표 수사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고, 하겠다는 것”이라는 중수부장 출신의 한 변호사 말처럼 구도는 이미 완성된 듯하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배수의 진을 치고 검찰에 대항하고 있다. “검찰의 과잉 수사이고, 야당에 대한 탄압” “야당을 흠집 내기 위한 정치쇼”. 앞선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조사에서는 이미 “전쟁”이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등장시켰다. 검찰이 수사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이 대표의 이름을 올리는 순간, 반발의 강도는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불현듯 최근 만난 한 전직 검찰 간부의 말이 떠올랐다. “조선시대 사화(士禍)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었는데, 곱씹어볼수록 수긍이 갔다. 정치의 패배는 곧 숙청으로 이어진다는 진단과 함께 어떻게 악순환의 그 고리를 끊을까 고민도 오갔지만, 또렷한 답은 없었다.
불편한 속을 다스리며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한번 해본다. 압수수색 오는 검찰에 활짝 문을 열어 주고, 검찰 소환조사 통보에 망설임 없이 출석하고, 검찰의 거센 추궁에는 당당하게 맞서는 야당 대표의 모습이다. 이전 정치인과는 결이 다른, 쿨한 냄새 잔뜩 머금은 그 모습에서 나는 이런 메시지를 읽을 듯하다. “정치 탄압의 악습, 내가 희생할 테니 이제 끊자.”
말도 안 된다고? 너라면 그렇게 할 거냐고? 그냥 상상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겐 기대할 게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의 답답함 정도로 이해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