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가 돼지에 대해 아는 게 뭐지?

입력
2022.11.09 21:00
25면
이동호 지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라니! 돼지를 키워서 어떻게 했다는 말일까? 일단 무슨 주의자라는 단어부터 왠지 내용이 쉽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어쩌면 고기를 좋아하는 내게 무언의 압박감을 주는 단어가 '채식주의자'라서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해서 매 끼니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다. 제주 시골로 이사와 집에서 내가 요리를 도맡아 하게 되면서부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고기 섭취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읽은 소감부터 말하자면, 지금껏 읽은 (몇 권 안 되지만) 동물권, 채식, 비건, 비인간동물에 대한 책 중에서 나를 가장 잘 설득하는 책이었다. 정말이지 설득당했다! 어려운 말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을 읽을 때는 논리로 맞서고 싶은 투지가 앞섰는데, 이 책은 그런 투지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육식주의자였던 저자가 돼지를 왜 키우고, 잡아먹었을까? 서툰 농부인 저자는 어느 날 '예의를 갖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직접 돼지를 키워보면서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백일 된 아기 돼지를 축사에서 트럭에 싣는 순간부터 긴장감이 넘쳐난다. 백일 된 돼지는 생각보다 크고 무거워서 안아 들 수가 없다. 세 마리 돼지를 트럭에 싣는 것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다행히 대안축산연구회 회원이자 진짜 축산인인 철인W와 람보Y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새끼 돼지들을 옮긴다. 돼지 방목장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성품 좋기로 유명한 고라니S 형님의 창고에서 전기목책기를 발견하고 신나서 가져다 설치한다. 하지만 가느다란 전깃줄에 닿은 돼지는 오히려 놀라서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이 고통이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냅다 앞으로 달렸다". 다시 돼지를 잡으러 혼비백산. 도망가는 돼지를 막긴 해야 하는데 직접 부딪히면 몸이 바스러질까 봐 걱정하는 지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냥 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저자는 돼지가 자는 곳 따로, 낮에 노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서 최대한 자연농법으로 키우려 하고, 먹이로 사료가 아닌 농부산물을 준다. 전 세계 농지의 83%가 가축을 기르고 그들을 먹이기 위한 작물을 재배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풍성하게 자라는 풀과 상품이 되지 못하는 농장의 부산물을 돼지에게 주는 건 일석이조다. 거기다 돼지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며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도 있단다. 돼지의 본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키우면서 저자가 깨닫게 되는 감각들은 직접 가축을 키우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직접 살을 맞대고 눈을 맞추고, 그들이 내는 다양한 소리를 듣고 먹는 모습을 보고, 똥을 치우고 물통을 채우는 대목에서 나는 자연스레 육식에 대한 자기합리화 논리가 무장 해제되었다.

이 책은 육식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자가 자신이 키운 돼지들에게 엄청난 감정이입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나친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결국 잡아먹힐 거라면, 살아 있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모든 육식을 반대하는 극단적인 채식에도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 의문들에 동참했다. 솔직히 책을 읽고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비건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가 겪은 일뿐이라고 하기엔 이 책은 너무 재밌고 리얼하고 결국엔 동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