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 살림살이를 논의할 예산국회가 열렸지만, 막상 세금을 어떻게 걷을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여야가 세법 개정을 심의할 기획재정위원회 내 조세소위원회 구성을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고 '지각' 기록을 경신했다. 나라살림은 뒷전에 둔 채 당리당략만 앞세우는 정치권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통상 전·후반기 국회가 구성된 직후에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소위원회를 구성해 법안이나 예산 등을 논의한다. 하지만 21대 하반기 국회가 7월 4일 시작했는데도 여야는 아직까지 기재위 소위(조세소위, 경제재정소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11월에 기재위 소위가 구성된 것은 2014년(11월 6일)이 유일하다. 이번에는 이보다 늦어지고 있다. 소위 구성 지연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발생했다. 앞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조세소위), 2021회계연도 결산안(예결소위)은 소위를 거치지 않고 기재위 전체회의에 바로 상정됐다. 소위가 문을 열지 않으니 법안 심사와 예결산 심사도 파행한 것이다.
소위 구성이 미뤄지면서 가장 차질이 우려되는 것은 세법 개정안 논의다. 세법은 정부의 다음 해 수입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하고, 상임위 심사 마감 기한도 11월 30일로 못 박아놓는다. 이 때문에 조세소위는 늦어도 11월 중순부터는 가동을 시작해 주 3회씩 10차례 내외 심사를 진행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법 외 다른 기재위 소관 법안을 심사하는 경제재정소위가 이 기간에 함께 열려 정부 측 참석자가 겹치기 때문에 조세소위는 매일 개최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조세소위는 이번에 올라온 17개 세법 개정안을 한꺼번에 들여다봐야 하는데 회의 횟수를 줄이면 그만큼 심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에도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경제재정소위가 마무리된 뒤 '벼락치기' 방식으로 조세소위를 진행하거나(2017년 사례), 법정 심사기한을 넘긴 적(2018년 사례)이 있다.
세법 개정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이를 둘러싼 납세자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국회에서 종부세법 개정안이 소위 없이 처리되면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1주택자 종부세 특별공제’ 처리는 아예 무산됐다.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나 소득세 기준인 ‘과세표준’ 상향 조정 등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당장 내년에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내야 할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불확실성은 예산이다. 예산안이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세금을 어떻게 걷어서 예산을 충당할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정부의 예산 집행이 어려워진다. 2020년 예산안을 처리하던 2019년 말에는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와 관련한 여야 갈등이 길어지면서 예산부수법안이 12월 27일에야 통과됐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예산 배정 절차가 지연됐다.
실질적인 법안 심사는 소위에서 이뤄지는 만큼 소위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특히 세금 걷는 방식을 정하는 조세소위는 기재위 내에서도 핵심 소위로 꼽힌다. 그만큼 여야는 조세소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논리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조세소위 위원장을 맡아 온 관례를 고집하고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 5년간 조세소위 위원장은 2017년(추경호)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출신이 맡았다. 추경호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도 여당이었던 2016년 소위원장을 맡은 뒤 2017년 심사 때 교체 없이 그대로 이어온 예외적 사례다.
민주당은 기재위원장을 여당이 맡은 만큼 조세소위는 야당 몫이 되어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위원장을 소수당인 여당이 맡았으니 소위는 다수당이 맡아야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은 여야가 1년씩 교대로 맡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 당이 먼저 맡을지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권 첫해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굵직한 변화가 많이 담긴 만큼 올해 소위원장은 여야 모두 반드시 탈환해야 하는 중요 ‘고지’가 된 셈이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12월 2일이 예산안 통과 시점이고, 예산부수법안은 기재위 조세소위 관련 법안이 상당수인 만큼 마냥 끌 수만은 없다”며 “양당 원내 지도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해야 한다. 협의하고 조정할 의지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