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주무장관 놔둔 채 경찰만 책임, 공감하겠나

입력
2022.11.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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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며 경찰을 강하게 질책하고 대대적 혁신을 강조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비공개 발언록에는 윤 대통령의 격노한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나”라며 책상을 내리치는 모습도 포착됐다. 대통령의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생생히 전달된다. 그러나 참사의 책임을 지휘계통 수뇌부보다 경찰 일선 현장에 맞춘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고 있다.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이것은 현대사회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대목도 그렇고,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의 대응을 지적하거나 이상민 장관의 실언 논란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태는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상민 장관 등 재난안전 관리 지휘부를 떼어놓고 논하기 힘들다. 경찰의 과오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장관은 “경찰청장을 지휘할 근거가 없다”는 식의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그는 8일 국회 예결위에서도 “현재 위치에서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퇴론을 일축했다. 대통령과의 교감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태도다.

윤 대통령이 연일 내놓는 사과와 재발방지 다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측근이라고 감싸고 머뭇거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여당에서도 “장관은 정치적, 결과적으로 책임지는 자리” “부실한 보고체계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등 사퇴 촉구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이다. 응당 지휘책임을 물어야 할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보란 듯이 현직에 있는 지금 상황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부 재난대응의 총체적 실패를 ‘꼬리자르기’ 또는 ‘경찰 손보기’로 의심받지 않으려면 대통령부터 엄중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선조사 후문책'이란 미명하에 실기하면 진실규명도, 제도개선도 힘을 받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