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에 놓인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당장 내년 1%대 가능성이 커진 경제성장률은 이후에도 반등하지 못하다가 20년 뒤엔 ‘0%대’까지 추락할 전망이다.
8일 국내외 경제기관의 내년 성장률 전망을 종합하면 한국 경제가 내년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의견이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고환율·고물가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7월 바클레이스·골드만삭스·JP모건 등 해외 9개 투자은행(IB)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평균 1.7%로 봤다. 한 달 전 전망(2.1%)보다 0.4%포인트 낮췄다.
이후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내놓은 민관 경제기관 역시 앞다퉈 1%대 성장률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각각 1.9%, 1.8%로 제시했고, 이날 내년 경제성장률을 발표한 한국금융연구원은 이보다 낮은 1.7%로 예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2.1%)을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며 하향 조정을 시사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이 점차 비관적으로 바뀌는 건 수출과 소비, 생산 등 모든 경제지표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10월 수출만 해도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미국의 공격적 긴축정책에 따른 고환율은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국내 물가마저 밀어올리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이 급격히 안 좋아진 데다, 미국의 긴축 기조에 대응하기 위한 한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내년 1%대 성장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목표(5.5%)보다 낮게 나올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중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에 추가적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0.8%),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0.9%)을 제외하고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해가 된다.
앞으로 상황도 밝지 않다. 고물가·고환율 등 단기 경제 충격에서 벗어나도 저출산·고령화 같은 구조적 요인으로 경제성장률이 뚝뚝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이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장기경제성장률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023~2030년 1.9%에서 2031~2040년 1.3%로 하락한 뒤 2041~2050년에는 0.7%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경제성장률 하락은 노동 공급 감소가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 공급은 경제성장률의 1%포인트 안팎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생산연령인구 비중 급감으로 해당 기여도가 점차 줄어 2030년대가 되면 마이너스(-)로 전환할 거라는 게 KDI 분석이다. 2020년 72.1%였던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50년 51.1%까지 곤두박질친다.
정 실장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여건을 만들고 외국 인력을 적극 수용해 노동 공급 축소를 완화해야 한다”며 “규제 합리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도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