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하나의 망으로 연결한 인터넷 시대가 곧 저물고, 그다음으로는 메타버스의 세상이 올 거라고 흔히들 말한다. 정말 가상의 자아로 현실처럼 활동할 수 있는 가상 시공간의 세계(메타버스)가 오기는 하는 걸까, 가능하다면 언제쯤 올 수 있는 걸까?
콘텐츠 생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세계적 기업 유니티(Unity)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만난 존 리키텔로 최고경영자(CEO)는 이 질문에 "메타버스 시대는 어쩌면 이미 눈앞에 와 있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그는 "내가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다"면서 자신의 태블릿PC를 들이밀었다.
그의 태블릿PC에서는 3차원(3D)으로 구현된 격투기 영상이 보였다. 이용자가 손가락으로 직접 태블릿PC 화면 각도를 조정하면, 경기 중인 두 선수의 모습을 앞과 옆, 뒤에서 모두 볼 수 있고, 가까이에서나 멀리서 보는 이미지도 구현할 수 있다. 관중 시점이 아니라 선수의 시선으로 보면서 격투에 임하는 간접 체험도 가능하다. 리키텔로 CEO는 "많은 이들이 메타버스를 가상현실(VR)과 혼동하지만, VR만이 메타버스의 형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꼭 VR헤드셋을 쓰고, 직접 아바타가 돼 가상 세계로 뛰어들어 가야만 메타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그가 이끄는 유니티는 게임 엔진을 만드는 업체다. 게임 엔진이란 윈도의 '그림판'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처럼, 게임 제작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다. 유니티에 따르면, 전 세계 매출 상위 모바일 게임 1,000개 중 70% 이상이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최근 유니티의 엔진은 게임뿐 아니라 메타버스 플랫폼 제작에도 쓰이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게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메타가 만든 가상세계인 '호라이즌 월드',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도 유니티 엔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리키텔로 CEO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너무 좁게 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감나는 3D이고 △실시간이며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게 바로 메타버스"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부엌을 리모델링하는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갖다 대면 컴퓨터가 알아서 공간 사이즈를 측정해 3D 도면을 만들고, '여기엔 냉장고, 바닥엔 시멘트'라는 식으로 말로 주문하면 즉각 디자인해서 보여줄 것"이라며 "이렇게 만들어낸 이미지는 실제 리모델링 후에 볼 수 있는 부엌과 완전히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메타버스는 그보다 더 진화한 단계다. 이 가상의 부엌에 소비자가 아바타로 들어가, 냉장고 손잡이 위치가 내 키에 적당한지, 싱크대와 아일랜드 사이 공간이 충분히 넓은지를 직접 재는 것까지 가능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리키텔로 CEO는 "우리 상상보다도 훨씬 빨리 올 것"이라며 "2030년이면 거의 모든 게 인터넷 대신 메타버스로 구현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니티는 메타버스 선도 기업을 목표로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한국기업들과의 협업에도 적극 나서는 중이다. 리키텔로 CEO는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관련 기술이 2, 3년은 앞서 있는 곳"이라며 "한국을 더 자주 찾아 많이 학습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