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들은 늘 과거만 얘기하고, 과학자들은 늘 미래만 얘기한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스노우(C. P. Snow)가 저서 '두 문화의 과학혁명'에서 한 말이다. 스노우는 냉전 시대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는데, 이때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서로 만나면 동문서답을 반복했다고 했다.
또 "과학자는 '셰익스피어'를 모르고, 인문학자는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 못 한다"는 말도 있다. 아마도 문과(文科)와 이과(理科)의 간극에 대한 특성을 이처럼 잘 대변하는 말들도 없을 것이다.
'文'의 어원은 '인간이 만든 무늬'라는 뜻이다. 흔히 우리가 입는 옷에 그려진, 즉 인간에 의한 무늬라는 말이다. 인간과 사회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문학(文)·역사(史)·철학(哲)으로 대표되며 최근에는 법률·경제학·언어·지리 등도 포함한 것이 인문학(人文學)으로 불린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져 버리면 그것들도 함께 없어져 버리는 것, 그것들에 대해 배우는 것이 문과이다.
'理'는 '돌에 새겨진 무늬'를 말한다. 즉 자연이 그린 무늬이다. 자연계의 원리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물리학·화학·동물학·천문학 등이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전부 사라져 버려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 그것들을 배우는 것이 이과이다.
지금처럼 문과와 이과가 나눠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두 자연과학자이기도 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였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철학을 연구하면서도 역학·물리학 등 그 밖의 학문의 틀을 놓은 과학자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익히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 역시 수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체계를 정립한 철학자였다.
근대에 와서도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자연을 탐색하는 일과 인간을 사색하는 일은 유리되지 않았다. 대개 과학자로 알고 있는 뉴턴 역시 역학뿐 아니라 철학과 신학에도 적잖은 저작을 남겼다. 근대철학의 비조로 꼽히는 데카르트 또한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물리학자였다. 근대 경험론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베이컨은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망라한 새로운 학문의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오랫동안 철학이란 바로 앎의 추구고, 그 앎은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문학의 사유와 과학의 실험이 합해서 진리와 진실에 다가서며 통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얼마 전까지도 자연과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불렀던 이유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세워진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이다. 당시 유럽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인 베네치아, 볼로냐 등에 교회 자금과 세상의 온갖 물자가 몰렸다. 여기서 복잡한 '상법(商法)'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관계자들은 '상법'을 공부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빙했다. 이 모임이 수사학, 논리학 등으로 범위가 넓어져 오늘날 대학의 시초인 'universitas(자치조직)'가 만들어졌다. 근대 교육기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현대 들어 학문 분야에 변화가 생긴다. 학문이 발전하고 분화를 거듭하면서 철학과 과학이 분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학문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으로 근본적으로 구분됐다. 인문과학에서도 사회과학 등이 자립하게 된다. 철학이라는 하나의 나무에서 여러 갈래의 학문이 파생된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에는 어느 한 분야의 지식만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복합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주(四柱)에서는 오행(五行, 木火土金水) 중 木·火 기운이 강하면 문과, 金·水 기운이 강하면 이과적 기질로 분류한다. 오행이 중화(中和)를 이루면 융합적 사고가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