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 빨리 현장에 가라"... 경찰 인파 관리 '체크리스트' 있으나마나

입력
2022.1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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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인파 관리 매뉴얼·세부 리스트 구비
현장 적용 위해 17년 전 만들어 2번 수정
이태원 참사 때 지켜진 항목 하나도 없어

경찰이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과 함께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적용할 ‘초동조치 체크리스트’도 만들었지만,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선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대응과 체크리스트를 비교했더니 지켜진 건 거의 없었다. 지휘관의 뒤늦은 현장 도착이나 지휘보고 지연 등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문제점이 죄다 초동조치 적용 대상이었다. 경찰이 기본 절차만 준수했어도 대형 인명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8일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찰의 다중운집 행사 매뉴얼에는 사고 발생 시 경찰이 취해야 할 초동조치가 5개 항목, 39개 리스트로 정리돼 있다. 큰 틀에서 △신고 접수 △현장 확인 △상황보고ㆍ전파 △초동조치 △지휘ㆍ지원으로 분류한 뒤 각 항목마다 점검해야 할 세부 리스트가 적혀 있다.

매뉴얼의 발행처는 경찰청 경비과로 2005년 10월 초판을 낸 후 2014년 8월 3판까지 발행됐다. 특히 매뉴얼은 경찰관 교육 및 직무수행 지침 외에는 외부 열람 및 전파ㆍ사용이 금지돼 있다. 참고용이 아니라 현장 활용을 위해 제작한 실전 지침서인 셈이다.

①경찰서장 신속 이동→차량 고집하다 도착 늦어

체크리스트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지휘ㆍ지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경찰 지휘부의 부실 대처에 상응하는 조치가 모두 망라돼 있다. 무엇보다 ‘경찰서장이 신속 임장(현장에 나옴)해 현장지휘본부로 전환했는지’ 사항이 뼈아프다. 참사 당시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총경)은 관용차 이동을 고집하다 현장 도착이 지체돼 지휘본부 구성 없이 주먹구구식 통제가 이뤄졌다. 그는 지난달 29일 오후 9시 47분 용산서 인근에서 사고 현장으로 출발했지만, 차량 안에 머무르다 발생(오후 10시 15분) 50분이 지난 오후 11시 5분에서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이땐 이미 수십 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서울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용산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상황보고서에는 이 총경이 현장지휘본부를 설치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지 않다.

②지휘관 즉시 보고→최대 2시간 지연

‘지휘관 및 참모에게 즉시 유무선 보고했는지’ 내용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 총경이 김광호 서울청장에게 보고한 시간은 오후 11시 34분이다. 그마저도 김 청장은 전화를 받지 못해 2분 뒤 사고를 처음 인지했다. 심지어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다음날인 30일 0시 14분 경찰청 상황1담당관의 전화를 받고 사고 사실을 알았다. 윤 청장은 5분 후 김 서울청장에게 전화로 총력 대응을 지시했는데, 서울청장의 경찰청장 보고 전 지시가 먼저 내려온 셈이다.

③유관기관 협력 무시 ④경고방송 전무

경찰은 소방청과 용산구 등 ‘유관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사항도 지나쳤다. 소방당국은 당일 오후 10시 18분부터 이튿날 0시 17분까지 경찰에 15차례 현장 통제를 요청했으나, 경찰 11기동대가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오후 11시 40분이었다. 경찰은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오후 10시 56분 서울청에 다수의 경찰인력 투입을 요청한 지 20분이 지난 오후 11시 17분쯤 처음 출동 지시를 내렸다.

‘경찰통제선 내 주민 등 대피 경고방송과 강제대피’ 조치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압사 사고가 터지자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모 경사가 현장에서 인원을 통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방송 차량 4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도 발생 시간을 훌쩍 넘긴 30일 오전 1시 40분쯤이었다.

이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