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10일 육지와 단절 흑산도… 공항 건설로 재도약 노린다

입력
2022.11.18 04:00
17면
그 섬에 가다 <12> 신안 흑산도
홍어학교 개설해 주민들 역량 향상 
천주교· 불교 유산에 고래공원까지
주민들 최대 숙원 흑산도 공항 건립
내달 환경부 심의 통과 땐  탄력 전망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 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지난달 26일 전남 신안 흑산도 항구에 들어서자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가 흘러 나왔다. 노래 가사처럼 육지만 애타게 그리워했던 마음을 담은 예리마을 고갯마루 흑산도아가씨 조형물이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남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흑산도행 쾌속선을 타면 도초도를 들러 흑산도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2시간이라고는 하지만 흑산도 바닷길은 외지인의 방문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는다. 실제 흑산도는 365일 중 110일 정도 육지와 단절된다.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흑산도를 찾은 관광객들도 많은 날이었다. 만선인 쾌속선에서 내려 흑산도항에 발을 내디디자, 여행객을 태울 관광택시와 20인승 버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느 섬의 항구 풍경과 다를 바 없었지만, 코를 찌르는 홍어 냄새 때문에 이곳이 흑산도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온 천미성(62)씨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해산물 때문에 흑산도를 찾았다"며 "하루면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세상인데 해상 교통은 날씨 영향으로 제약을 받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흑산도는 크게 3개 마을에 2,000여 명의 주민이 모여사는 큰 섬이다. 북쪽 흑산항을 사이에 두고 진리와 예리마을이, 남쪽에는 사리마을이 있다. 열두 굽이 일주도로와 비경이 어우러진 흑산도는 '홍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홍어학교 참여 주민만 20명 넘어

홍어의 본고장답게 흑산도에는 홍어학교까지 개설돼 있다. 이날 흑산도 복지회관에서는 신안군이 추진한 '흑산홍어썰기학교' 3기 학생 10여 명이 홍어손질부터 썰기, 포장 등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30대부터 60대까지 흑산도 주민들이 참여한 홍어학교는 2020년부터 군 관광협의회가 추진한 사업이다. 흑산도 인구 고령화로 설이나 추석 등 주문이 많은 명절에 홍어를 써는 인력이 부족해, 제때 공급을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마련됐다. 홍어학교에 참여한 마을 주민 이은이(39)씨는 "2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홍어 손질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무료로 비싼 홍어를 12번이나 써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면서 "홍어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용돈 벌이를 할 수 있게 돼 좋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홍어학교를 마친 1~3기 주민 22명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주관한 홍어썰기 기술자 자격시험에도 응시했다.


조선 후기 천주교, 통일신라~고려 불교 유산도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는 다른 관광자원도 많다. 조선시대 후기 정약전이 유배생활 중 '자산어보'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한 흑산도에는 정약전의 집과 사촌서당 등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역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 중 박해를 받은 여성들도 흑산도에 묻혀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전남에서 목포 다음으로 흑산도에 성당이 건립됐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흑산도는 원래 해상불교문화의 거점지였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신안군은 흑산도 무심사터 복원에 나섰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래잡이도 이뤄졌다. '대흑산도 포경근거지'가 설치돼 1년에 99마리의 고래를 해부한 곳이 흑산도다. 동해에서나 볼 수 있는 고래공원이 서해 흑산도에 있는 이유다.


전국 어디서나 1시간 이내...흑산도 공항 건설

흑산도 공항 건설은 주민들의 최대 숙원 사업이다. 정일윤 흑산도공항추진위원장은 "흑산도는 몸이 아프거나 응급상황에도 바람이 조그만 불어도 며칠씩 왕래가 막히면서 주민과 관광객이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파도가 높은 겨울철에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선박 통제가 잦아 주민 대부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공항이 제일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신안군은 예리항에서 북동쪽으로 1.6㎞ 떨어진 대봉산 일대 68만3,000㎡를 흑산도 공항 예정지로 지정해 놓았다. 공항이 들어서면 가장 가까운 전남 무안공항에서 흑산도까지 30분 안에 도착한다. 전국 대부분 공항에서 1시간 안에 흑산도에 다다를 수 있다. 전남도와 신안군은 50인승 소형 항공기를 취항시킬 예정이다.

관건은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다. 공항 부지가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는데다 철새 도래지라는 점 때문에 10년 넘게 제동이 걸렸다. 실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장도'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영산도'를 품고 있는 흑산도는 330여 종의 철새가 거쳐가는 중요한 거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와 신안철새박물관이 조성돼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새 조각 공원도 2014년 문을 열었다.


철새 보호 위해 6곳에 대체 서식지도 조성

철새 보호와 공항 건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신안군은 흑산도 6곳에 철새 대체 서식지를 조성했다. 철새 주요 이동경로에 먹이와 휴식처를 제공하면서 활주로 주변을 찾는 철새들을 섬 곳곳으로 유인, 보호하겠다는 의지다.

군은 또 해마다 철새 먹이주기 사업으로 흑산도 60여 농가에 1억3,000여만 원을 지원한다. 이들 농가는 휴경지에 봄에는 조와 수수를 심고, 가을에는 배추를 절반만 수확해 철새들의 먹이로 이용한다. 사업 시행 이전과 비교해 철새 숫자도 두 배 이상 늘었다. 흑산도 주민 조수양(62)씨는 "주민들이 철새먹이까지 주면서 공항 건설을 희망하는 이유는 지역 경제 활성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흑산도 공항이 건설되면 연간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갈 것으로 군과 마을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해상국립공원 해제 문제도 인근 비금도 명사십리해변 등 550만㎡를 국가공원으로 편입시키는 쪽으로 관계 부처와 합의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기존 흑산도 공항 부지보다 면적이 8배 이상 넓다. 한국섬진흥원 관계자는 "공항부지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규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수 신안군 흑산도공항지원단장은 "흑산도 활주로 예정지에 펼쳐진 곰솔 군락지가 고사하면서 개발 제약 조건이 사라졌다"면서 "다음 달 중순쯤 열릴 예정인 환경부 공원위 심의만 통과되면 내년 하반기 착공해 2025년 개항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 박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