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쓰기의 지겨움... "간편하고 쉽게 쓸 수 없을까요?"

입력
2022.11.13 07:00
14면
가계부 쓰는 목적은 "돈 덜 쓰려고" 
지겹다면 '비정기적 지출' 예산 조여야 
가계부 공유 4년 차 고수의 비법

편집자주

'내 돈으로 내 가족과 내가 잘 산다!' 금융·부동산부터 절약·절세까지... 복잡한 경제 쏙쏙 풀어드립니다.


예금금리가 6%를 돌파했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원금을 보장해주는데 수익률을 무려 6%나 챙겨주는 상품들이 진짜 나타났어요! 사기가 아닙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1억 원만 있어도 한 달 이자만 세금 떼고 42만3,000원을 준대요. 10억 원만 있으면 이자로 웬만한 연봉은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저는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자아실현을 위해 계속 다녀야 할까요?

허무맹랑한 고민이지만 새삼 '종잣돈'의 가치를 체감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이자 갚느라 모아둔 돈도 없는데, 천정부지로 뛰는 예금금리를 보니 다 된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하지만 한탄만 하기엔 세상은 돈 들어갈 일투성이입니다. 기회를 잡는 방법은 결국 하나죠. 그럴수록 더 바짝, 더 독하게 돈을 모으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이번 기회는 놓치더라도 다음번엔 꼭 잡을 수 있으니까요.

가계부 쓰기가 지겨워진 당신에게

오늘은 종잣돈 모으기의 정석, 바로 '가계부 쓰는 법' 2탄을 준비했습니다. 지난번 1탄('부부 가계부' 써봤더니...)에서는 월급 실종 미스터리를 풀어봤어요. 읽어보면 더 좋겠지만, 요약하면 미스터리의 해답은 바로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기 때문으로 밝혀졌어요. 그리고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가계부를 써야 하고, 반드시 고통스러운 '결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죠.

2탄은 가계부 쓰기와 관련된 더 깊은 얘기와 함께 가계부 쓰기 '초고수'분을 인터뷰해 볼 예정이에요. 저처럼 '가계부 쓰기 매너리즘'에 빠진 중급 가계부 독자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처음 가계부를 쓰시는 분도 참고하면 좋습니다.

나는 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나

가계부를 1년 가까이 써 보니 쓰는 것 자체는 아주 쉬워졌습니다. 지출을 하면, 기록을 하고, 한 달이 지나면 항목별로 얼마를 썼는지 결산을 하죠. 그럼 생각합니다. '이번 달은 지출이 많았구나. 다음 달엔 좀 줄여야겠다'든지, '이번 달은 지출이 줄었네. 잘했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다음 달이 또 시작되면 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죠.

그동안 쓴 가계부를 보면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결산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어쨌든 가계부를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경제적 위안이 되니까요. 가계부를 쓰기 전보다 지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늘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처음 가계부를 썼을 때로 돌아가 볼게요. 애초에 우리가 가계부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탄에서 봤듯 가계부를 쓰면 ①우리집 지출 구조 파악 ②의식적 소비생활 ③계획적 미래 설계 등 효능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효능들은 가계부를 쓰고 난 뒤 얻게 된 결과지, 애초의 목적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가계부를 굳이 쓰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을 안 쓰거나' 혹은 '돈을 덜 쓰려고'입니다. 가계부를 쓸 땐 언제나 한 손으론 휴대폰 가계부 앱을 들고, 다른 손으론 그 목표를 꽉 잡고 있어야 했던 것이죠.

지겨워졌다면, 예산을 다시 통제해 보세요

현실적으로 돈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으니, '덜' 쓰기 위해선 기준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쓰거나 '덜' 쓰거나를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1탄에서 말했듯, 각자 가정 환경과 경제관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기준을 제시할 순 없어요. 남들과의 비교도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대출 원리금·보험비·교육비·관리비·통신비·공과금 등 고정 지출은 더욱 그래요.

하지만 그간 가계부를 몇 개월 이상 써 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고정 지출이 아닌 비정기적 지출은 상대적으로 본인 의지에 따라 더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을요. 게다가 우리는 그간 가계부 쓰기를 통해 식료품·외식비·생필품·모임·미용·의복·취미·여행·경조사 등 가족이 비정기적 지출에 얼마를 써 왔는지도 이미 알고 있어요. 일단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각 항목별로 얼마를 줄이겠다고 촘촘히 나누기보다는 비정기적 지출 전체를 대상으로 감축 목표를 재설정해 보세요.

가계부 인증만 4년째 '초고수의 비법'

자, 이제 제가 특별히 모신 가계부 쓰기 '초고수'를 불러 볼게요. 먼저 소개하자면 이 분은 '돈을 덜 쓰겠다'는 에너지를 언제나 100% 충전하고 있는 동시에 비정기적 지출을 감축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특허까지 낸 분입니다. 가계부 쓰기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초고수 얘기를 참고해 보세요.

-자기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말부터 4년째 유튜브에 가계부 내역을 공개하고 있는 유튜버 '순빠리네 쓰담여사'입니다. 구독자는 5,000명 정도고요. 유치원·초등학생 자녀 두 명·남편과 함께 한 달 생활비 100만 원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한 달 100만 원이요?

"네. 당시 월급에서 고정 지출을 빼고 나니까 쓸 수 있는 돈이 딱 100만 원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처음 5개월은 한 번도 못 지켰어요. 사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가계부를 쓰면서 한 번 성공하고 나니까 '꼭 지키고 싶다'는 욕심이 더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가계부를 쓰다 보니 4년 만에 순자산이 2배 늘어났습니다."

-순자산 2배요?

"애초에 모아둔 돈을 다 쓴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비율로 따지면 2배지만 기대하는 것처럼 절대액으로는 많지 않아요. 요새는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부부 모두 대기업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라 월 소득이 많은 편은 아니랍니다. 집은 수도권 구도심에 있는 아파트를 2억 원대에 구입했고요. 순자산에서 아파트 시세 상승분은 빼고 계산했어요."

-가계부는 어쩌다 쓰게 됐나요?

"첫 아이를 낳고 모아둔 돈 2,000만 원을 다 썼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휴직을 하면서 마이너스통장(마통)을 쓰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어요. 마통이 1,000만 원을 찍고 '내가 빚으로 아기 분유를 사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 마통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아기 둘을 키우는 주부가 뭘 할 수가 없잖아요. 생활비라도 아끼자는 심정으로 가계부를 집어 들었죠."

-유튜브를 보니 가계부가 좀 독특하더라고요.

"네. 직접 만든 '깍두기 가계부'를 사용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가계부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엑셀은 둘째가 젖먹이라 컴퓨터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포기했고, 휴대폰 앱은 간단해서 좋긴 한데 앱 자체를 잘 안 열어보게 되더라고요. 직접 살림하고 있다는 맛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애 둘 키우는 주부가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수기 가계부를 만들어 봤어요. 용지에 네모 칸 10개씩 100칸을 만들고, 1만 원을 쓸 때마다 1칸씩 색칠해 봤어요. 한 달 동안 비정기적 지출로 100만 원을 다 쓰면 100칸을 다 색칠하게 되죠. 집 거실에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붙여 놓고, 돈 쓸 때마다 색연필로 색칠하면 끝이에요. 저는 100칸으로 시작했지만, 각자 사정에 맞게 칸 수를 조절해 주면 됩니다."

-효과가 좋은가요?

"가장 큰 장점은 결산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가계부는 결산이 제일 힘들잖아요. 한 달간 쓴 내역 정리해서 봐야 하고, 반성도 해야 하니까 그것 때문에 가계부가 쓰기 싫어지거든요. 그런데 깍두기 가계부를 쓰면 몇 칸 남았는지만 확인하면 돼요. 일반적인 가계부처럼 '얼마를 썼구나'를 생각할 필요 없이 '얼마가 남았구나'에 집중하니까 결산 과정이 생략되죠.

한 달이 안 지났는데 빈칸이 한 줄(10만 원) 남은 가계부를 본 뒤 마트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출하기 전부터 경계심이 팍 들어요. 사고 나서 나중에 반성하는 게 아니라 살 때부터 소비가 통제되는 거죠."

-갑작스럽게 큰돈을 써야할 때는요?

"네.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죠. 경조사들이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10만 원을 기준으로 넘어가면 예비비에서 별도 지출하고, 그 밑으로는 가계부에 색칠합니다. 가끔 다음 달로 이월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대한 해당 월에 해결하려고 합니다."

-가족 여가는 어떻게 보내요?

"아이들이 산, 강, 바다, 공원 등 뛰어놀 수 있는 곳을 좋아해요. 밖에서 같이 뛰어놀거나 배드민턴을 하거나 자건거를 타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돈을 안 쓰려고 그런 곳을 가진 않았는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저희 부부도 힐링할 수 있죠. 아이들이랑 놀러 가기 위해 7년 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신차를 구매한 게 인생 최대 사치라면 사치겠네요."

-행복한가요?

"네. 가계부 쓰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지금이 더 행복하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니까 걱정이 없어요. 처음엔 빚만 없으면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남아 있는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까 고민인 거예요. 4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운 발전이죠."

김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