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이 만든 '봉화의 기적'...이태원과 달랐다

입력
2022.11.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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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북 봉화군에 있는 한 아연 채굴 광산에서 발생한 갱도 붕괴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사고 221시간 만인 지난 4일 밤 늦게 구조됐다. 두 사람은 자력으로 걸어나올 정도로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고 전해졌다.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던 가족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는 국민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는 기적 같은 귀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매몰돼 있던 갱도 안쪽에는 물이 흘렀고 공기가 통하는 등 비교적 생존 가능성이 있는 환경이었다 해도 매몰자들이 광산 사고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면 장시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이들은 사고가 나자 당황하지 않고 공기가 들어오는 쪽, 물이 흐르는 쪽으로 대피하라는 매뉴얼을 잘 따랐다. 갱도 안에서 찾은 비닐로 천막을 둘렀고 암벽에서 흐르는 물로 목을 축였다. 광산 사고 시 매몰자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매뉴얼을 준수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는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온 이태원 압사 참사와 비교가 된다. 핼러윈과 같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대규모 행사 때 경찰, 소방, 자치단체 등 유관기관 어디에도 인파를 통제할 매뉴얼이 없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3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이태원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자 주최 측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기관도 통제에 나서지 않았다. 허술한 매뉴얼과 소극행정이 대형참사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봉화 광산 매몰자들이 침착하게 행동한 것과 대조적으로 사고 발생 이후 회사의 대응은 갈팡질팡했다. 회사 측은 붕괴 사고가 나자 자체적으로 구조작업을 하다가 14시간 30분 뒤에야 119에 신고했고, 구조당국은 회사 측이 제공한 20여 년 전 도면을 보고 시추작업을 하다가 엉뚱한 곳에 시추공을 뚫었다. 이 때문에 이틀이면 가능한 작업이 닷새나 걸렸다. 업체가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늑장신고를 한 것은 아닌지, 사전 안전조치는 충실히 이행했는지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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