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터진 직후 인파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현장 경찰관들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분노는 방향을 틀었다. 사전 대비와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한 수뇌부에는 ‘성토’를, 구조활동에 사력을 당한 현장 경찰관들에게는 ‘격려’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1일 윤희근 경찰청장이 고강도 감찰의 이유로 “미흡한 현장 대응”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시민들은 그런 줄 알았다. 분위기가 바뀐 건 참사 당시 윤 청장의 동선 등 ‘먹통’이 된 경찰의 지휘보고 체계가 분 단위로 공개되면서다.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지휘부의 행태를 지켜보며 다수 시민들이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내비치고 있다.
2일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한 지하철 역무원 A(41)씨는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일선 경찰관들이 수차례 지원요청을 했지만 수뇌부가 외면한 것 아니냐"며 “주최 측이 없는 행사여도 윗선이 직접 질서 확립을 지시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역 지원 근무를 나갔다는 그는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우리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딸의 유품을 찾기 위해 유실물센터를 방문한 희생자 어머니 역시 “첫 신고가 들어갔을 때 수백 명만 보냈다면…”이라며 오열했다. 4일에는 한 유족이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낸 근조 화환을 내동댕이친 뒤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조화는 왜 보냈느냐”면서 거친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반면, 여론의 비난을 한몸에 받던 이태원파출소 등 현장 경찰관들에게는 응원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서울 용산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응원하는 시민이 많다는 걸 잊지 마시라” “힘이 되어주지 못해 저희가 죄송하다”는 등 격려 글이 40개 가까이 올라왔다. 참사 현장에 있었던 김일권(40)씨는 “경찰관들은 옷이 땀에 흠뻑 젖도록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애썼다”면서 “그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다.
희생자 유족도 직접 이태원파출소를 찾아 직원들을 위로했다. 3일 오후 10시쯤 이태원파출소에는 한 시민이 “고생하셨다”며 봉투에 담긴 캔 커피를 들고 왔다. 경찰관이 자초지종을 묻자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는 “발인을 마치고 현장에 와 봤다. 이것밖에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흐느꼈다. 유족과 참사 당일 근무를 섰던 경찰관들은 다 함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앞서 2일에도 이태원 거주 주민이 파출소를 방문해 “안타까운 이 비극을 우리 모두 잊지 말고 슬퍼하되, 고생하신 경찰관 분들이 자책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놓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