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 한국팀 맞대결에 들썩... DRX 우승은 한 편의 영화였다 [롤드컵]

입력
2022.11.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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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밀리던 한국팀, 다시 정상
DRX, T1과 맞붙어 3대 2 극적 승리
데프트, 동창 페이커 상대 올 첫승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체이스센터. 이곳은 농구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구장이지만, 이날은 다자간 전략 액션 PC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팬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LoL 월드 챔피언십, 이른바 '롤드컵' 결승을 직접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결승전의 주인공은 한국팀이었다. 명실상부 e스포츠 최고 스타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속한 'T1'과 이번 대회 8강과 4강에서 각각 작년 우승팀(중국 에드워드 게이밍), 국내 리그 최강팀(젠지)을 차례로 꺾고 올라온 'DRX'가 맞붙었다. 공교롭게도 두 팀 주장이 모두 1996년생 서울 마포고 동창이라 더 관심이 쏠린 이번 승부의 결과는 3대 2, DRX의 신승이었다.


1만6000석 매진, 2500달러 암표 올라오기도

LoL 개발사이자 롤드컵 주관사인 라이엇게임즈에 따르면, 준비된 결승전 티켓 1만6,000장은 일찌감치 전부 동났다. 암표 가격은 경기 직전 무려 2,500달러(약 352만 원)까지 치솟았다.

열기를 반영하듯 이날 체이스센터 앞은 경기 시작 5시간 전부터 이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입장이 시작될 때쯤엔 입구부터 경기장 한 바퀴를 빙 둘러 다시 입구에 달할 정도였다. 한국팀 간 승부란 게 의미가 없을 만큼 팬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중국인 준하오씨는 "중국팀이 올라올 것을 기대하고 예매했지만, 페이커를 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LoL 인기 캐릭터 티모 모자를 쓴 미국인 데이브씨는 "LoL에 열광하는 팬으로서 누가 이겨도 좋지만, DRX가 이기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2승씩 주고받는 초접전 끝에 이날 우승컵은 DRX가 들어올렸다. 이전까지 DRX의 롤드컵 최고 성적은 8강이었고, 올해 T1과 맞붙은 경기에선 전패했다. 이번 승리로 DRX는 롤드컵 하위 12팀 간 대결(플레이-인 스테이지)부터 시작한 팀 가운데 사상 첫 승리팀이 되는 진기록도 썼다. 5년 전 롤드컵 결승에서 한국팀 삼성 갤럭시에 석패한 뒤 한동안 키보드에 얼굴을 파묻고 일어나지 못했던 페이커는 다시 한번 한국팀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우승팀 상금 32억원+α, 명품업체 앞다퉈 협업

롤드컵은 매년 국가별 리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팀들이 모여 최고팀을 가리는 대회다. 중장년층에겐 생소할 수 있지만, 롤드컵은 Z세대에겐 월드컵을 능가할 만큼의 영향력을 자랑한다. 라이엇게임즈에 따르면, 지난해 결승전의 분당 평균 시청자는 2020년보다 32% 증가한 3,060만여 명, 총 시청 시간은 2억3,260만여 시간으로 집계됐다.

이번 결승 우승 상금은 222만5,000달러(약 32억 원)이다. 여기에 디지털 판매 수익 일부가 더해진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제작했던 우승 트로피 '소환사의 컵' 케이스를, 올해는 미국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가 만들었다. 우승팀 선수들에겐 라이엇게임즈와 메르세데스-벤츠가 함께 만든 우승 반지가 수여됐다. 세계적인 고가 브랜드들이 앞다퉈 협업할 정도로 LoL의 영향력은 크다.


폭풍성장 e스포츠, 2029년엔 7조원 규모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억2,000만 달러(약 1조7,210억 원)에서 올해 14억4,000만 달러(2조310억 원)로, 2029년이면 54억8,000만 달러(7조7,320억 원)로 커질 전망이다. 여기엔 게임단 예산, 대회 상금, 중계 매출 등이 포함된다.

LoL은 e스포츠 경기 중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전까지 롤드컵 우승을 6회나 차지한 e스포츠 최강국이었지만, 2017년 삼성 갤럭시 우승 이후 침체기를 겪었다. 2018년 이후 열린 롤드컵 4번 중 3번의 우승은 중국의 차지였다.


전 세계 LoL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중국은 e스포츠에 대한 집중적 투자를 통해 최근 수년 새 세계 최강의 위치로 올라섰다. 한국인 감독과 선수 영입에 공격적으로 나선 것도 부상 요인으로 꼽히는데, 주장 데프트(김혁규)를 포함한 DRX 소속 선수 세 명도 과거 중국팀에서 뛴 적이 있다.

T1과 DRX 두 팀이 나란히 결승에 오른 올해 대회는 중국에 밀리는 듯했던 한국의 부활을 알린단 의미가 있다. 한국이 부진을 딛고 부상한 데는 지난해 라이엇게임즈가 국내 리그 제도를 바꾼 영향이 컸다. 2부 리그가 없어지면서 기업들의 투자 위험이 줄어든 게 전반적인 투자 확대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e스포츠는 내년 9월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당당히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시범 종목이었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던 LoL 한국 대표팀은 내년 대회에서 설욕을 노리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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