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하고 관리하고 있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은 정부 합동분향소와 여러모로 다르다. 특히, 조화가 항시 준비돼 있는 인근 녹사평역 정부 합동분향소와 달리 이곳에선 개인이 조화를 직접 가져오지 않으면 헌화를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빈손으로 현장에 왔다가 당황하는 추모객이 적지 않다.
강남 지역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서준(34)씨는 조화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추모객을 위해 4일 대국 800송이를 무료로 제공했다. 이날 김씨가 신문지에 싸인 국화 다발을 현장에서 꺼내 손질하자 시민들은 가져가도 되냐고 조심스레 물었고 김씨는 꽃을 건넸다. 시민들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김씨의 조화 기부는 이날이 벌써 세 번째, 기부한 국화는 2,000송이가 넘는다. 추모공간이 처음 조성된 31일 300송이, 이틀 뒤엔 1,100송이를 더 기부했다. 김씨는 "추모하러 가는 손님들이 울면서 꽃을 사가는데 돈을 받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 또한 이번 사고로 지인을 잃었다.
역시 강남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최민지(36)씨도 국화를 기부했다. 최씨는 지난 2일 대국 1,200송이를 추모공간 옆에 두고 오면서, 국화 박스에 '미래의 희망이었을 사상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 말씀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붙였다. 최씨는 "직업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조화 1,200송이는 금방 동이 났고, 바로 옆 추모공간에 차곡차곡 쌓였다.
국화 박스는 추모공간에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텅텅 비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채워졌다. 일종의 기부 릴레이가 이루어지면서다. 3일 이태원역을 찾은 김종옥(59)씨는 빈 꽃 박스를 발견하고 국화 열 송이를 사다가 채워 넣었다. 김씨는 "나같이 빈손으로 오는 분들이 꽤 있을 거 같았다"면서, "무료로 가져가라는 통이 있길래 이 통에 국화꽃이 계속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기부 이전에도 국화 한 다발을 가져와 놓고 간 시민이 있었고, 인근에서 환전소를 하는 상인은 학생, 군인, 노인에게 무료로 국화를 나눠줬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없다. 용산구청은 인근 녹사평역에 설치된 정부 합동분향소에 한해서만 국화를 비롯한 조문 물품이나 인력을 제공하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보니 조화를 제공한다든가 등의 관리는 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추모공간 훼손 방지나 주변 정돈도 자원한 일반 시민 봉사자들 4~5명이 교대로 하고 있다. 추모공간이 5일째 운영되다 보니 시든 꽃과 부패한 음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박길선(65)씨는 "꽃만 부족한 게 아니다. 끊임없이 음식, 꽃 등 추모 물품들이 쏟아지는데 새벽부터 정리를 하느라 혼났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