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이 마약을 복용했다." "유명 BJ가 방문한 후 사람들이 몰려 사고로 이어졌다."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직후 각종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한 주였다. 피해자를 향한 지나친 혐오와 미확인 정보들이 넘쳐 나면서 "가짜뉴스는 반인륜행위"(양금희 국민의힘 수석 대변인)라는 질타도 나왔다.
사실 대형 참사 직후 가짜뉴스가 난무하며 사회가 뒤숭숭해지는 건 유사 이래 '전 세계적' 현상이다. '가짜뉴스의 고고학'(동아시아 발행)을 저술한 최은창 박사에 따르면 가짜뉴스는 로마시대에도, 1차 세계대전 때도 있었다. 특히 새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폭발적으로 늘었다. 인쇄술이 발명됐을 때,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 텔레비전이 보급됐을 때 새로운 형식의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다는 말이다. 온라인과 1인 미디어로 판도가 바뀐 요즘, 대형 참사는 어쩌면 가짜뉴스를 퍼뜨릴 좋은 구실이 되는 셈이다.
이태원 압사 참사 직후 전파된 가짜뉴스의 대표적인 예는 이렇다. ①예년에는 핼러윈데이 관련 이태원에 경찰 800명을 투입했다 ②참사가 난 골목을 예전에는 일방통행으로 통제했다 ③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해 핼러윈데이 이태원에 대대적인 마약단속을 시행하고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경찰 기동대를 '일부러' 배치하지 않았다 ④이태원 참사 원인이 된, 정부 '마약과의 전쟁'의 중심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있다.
물론 경찰청 자료 등을 확인해보면 사실이 아니다. 핼러윈데이에 경찰은 2017년 90명, 2018년 37명, 2019년 39명을 이태원 지역에 투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인 2020년과 2021년에는 지역경찰과 형사 등을 포함한 경찰 인력이 각각 38명, 85명으로 크게 늘지 않았지만 방역예방을 위해 경찰관 기동대가 별도 배치됐다. 올해에는 지역경찰 32명, 수사 50명, 교통 26명 등 137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경찰 투입 800명' 이야기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시기 "경찰과 방역당국이 800명 규모의 합동점검반을 동원한다"는 기사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며칠이 지나면서 해외에서도 가짜뉴스들이 퍼져 나왔다. ⑤베트남에서 일부 시민들이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 참사를 패러디했다는 가짜뉴스가 나오자 주베트남한국대사관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해당 패러디는 베트남에서 자주 발생하는 교통사고 상황을 빗댄 코스프레로, 매년 핼러윈 행사에 자주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⑥일본에서도 "한국 미디어가 '일본으로부터 잘못된 형태로 핼러윈 문화를 도입한 탓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는 소문이 등장했다. 한국의 이태원 참사 보도 기사와 칼럼, 참사 관련 교수 인터뷰 등을 짜깁기한 가짜뉴스다.
물론 이전 정권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한결같이 가짜뉴스가 번졌다. 2017년 포항 대지진 때는 '정부 지진피해 지원금을 받으려면 대피소에 있어야 한다'는 유언비어가 지역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부 통제관이 브리핑에서 "대피소에 있거나 없다고 해서 피해지원에는 차이가 없다"고 직접 해명하며 일단락됐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이 났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음주 등으로 인해 대응을 지체했다'는 유언비어가 온라인에서 퍼졌다. 이 소문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에 고발조치할 것'이라 엄포를 놓으며 역시 일단락됐다.
코로나19는 가짜뉴스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사람들이 황당한 주장을 얼마나 쉽게 믿어버리는지를 보여줬다. 소금물 스프레이를 뿌린 종교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등 확인되지 않은 각종 예방‧퇴치법이 난무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정부가 '공적 마스크'를 직접 관리하는 과정에서, 공적 마스크 유통사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의 '커넥션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유통사 대표가 숙명여대를 졸업한 사실이 와전돼 경희대를 졸업한 김 여사와 숙명여고 동문으로 특혜를 받았다는 가짜뉴스로 전파됐다. 기획재정부가 해명자료를 배포했는데, 이후 김 여사가 착용한 마스크가 일본산이라는 루머도 나왔다.
참사 때 가짜뉴스가 퍼지는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2019년 9월 인도네시아 암본 지역 섬에서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한 후 '후속타로 쓰나미를 동반한 지진이 발생할 것'이란 허위정보가 왓츠앱 등 온라인 메신저로 유포돼 이재민들이 2주 동안 대피소 생활을 했다. 이재민들의 불안이 사그라들지 않자 그해 10월 정부가 직접 해당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발표했다.
2019년 10월 일본 오키나와의 세계문화유산, 슈리성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중국인 또는 한국인 소행이라는 루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확산됐다. 당시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매체들은 "원인이 불명확한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불안감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인 방화설은 '가짜뉴스'"라고 강조했다. 같은 해 7월 33명의 사망자가 나온 일본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화재 당시에도 "방화는 한국인의 습성", "일본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보복"이라는 괴소문이 일본 온라인을 통해 확산된 바 있다.
2019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일대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대지진이 발생해 캘리포니아주가 미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섬이 될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확산됐다. 당시 리히터 규모 6.4, 7.1의 강진이 발생한 후 3.0~3.7의 여진이 10여 차례 이어지며 나온 루머였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직접 CNN과 폭스뉴스 등을 통해 해당 가짜뉴스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가짜뉴스들을, 왜 참사 직후 사람들은 찾아 읽고 믿는 걸까.
전문가들은 △불안과 △남의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욕구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두 축이라고 말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보고서 '재난안전분야의 허위정보 실태와 대응방안'에 따르면 "재난·안전사고에서는 현장상황에 대한 정보의 공백을 메우고 일반 대중과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뉴스가 폭증한다.
오지희 고려대 박사의 논문 '사회적 불안이 가짜뉴스 수용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실제 사회불안감(능력불안감·관계불안감)이 높은 사람은 가짜뉴스를 수용하는 경향이 높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수도권 소재 대학 학생 380명(336명 응답)에게 한 설문조사를 통계 분석한 결과다.
오 박사는 "사회가 불안할수록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 시청이 증가한다는 기존 연구와 비슷한 맥락"이라며 "불안감을 경험하면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해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채우고자 하는데, 이때 가짜뉴스 또한 정보로 인식해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안감이 높아지면 정보수집 수단으로 SNS 이용이 늘었다. "사람들은 주로 이용하는 미디어의 정보를 더 신뢰한다"는 기존 연구들을 비춰볼 때, SNS를 많이 이용함에 따라 SNS상의 정보도 신뢰하게 된다.
이때 최대한 자극적이고 말초적일수록, 선악의 잣대로 상대편을 악마화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을수록 대중의 시선을 쉽게 붙잡을 수 있다. 관심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가짜뉴스의 동력인 셈이다.
2018년 가짜뉴스의 온라인 확산 유형을 분석한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가짜뉴스는 진짜뉴스보다 더 새로운 내용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며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면 다른 사람보다 해당 분야를 더 잘 아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에서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트위터에서 6배나 빨리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슈 파급력이 강한 정치 분야 가짜뉴스가 다른 분야보다 더 강하고 빠른 전파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