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같아져야 평등해지는 것 아니다" 영장류학자가 본 젠더

입력
2022.11.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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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드 발 '차이에 관한 생각'

“남성과 여성은 구성 개념에 불과하다. 젠더를 만들어내는 행동이 없다면 젠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이다. 생물학적, 젠더적(사회적) 남녀 차이는 없다는 뜻이다. 남녀 정체성이 뒤바뀔 수 있다는 주장에 성 해방론자들은 환호했지만, 과학계 입장에선 우아한 거짓말에 가깝다. 수컷과 암컷의 차이를 매일 마주하는 영장류학자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그가 새 책 ‘차이에 관한 생각’에서 생물학적 성(性) 차이를 옹호하고 나섰다. “나는 젠더나 성의 구분이 없는 세상에서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세상은 엄청나게 따분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정색한다. 우선 분명히 해두자. 드 발은 암컷이 무리를 지배하는 영장류 보노보 연구 선구자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 그저 남녀 간 차이가 없다는 오류 깨기에 사명감을 느꼈을 뿐이다.

미국 에머리대가 원숭이 135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자동차와 인형 장난감을 동시에 줬다. 대개 수컷은 바퀴 달린 자동차를 골랐고 암컷은 인형을 손에 들었다. 수컷에 인형을 쥐여주면 찢어버렸다. 암컷은 인형을 새끼처럼 다정하게 돌봤다. 왜 다를까. “암컷 원숭이는 나머지 생애를 새끼를 돌보며 보내지만, 수컷은 그렇지 않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남자아이에게서도 남성적 장난감 선호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자녀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여자아이의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남자아이에게 스커트를 입혀 학교에 가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저자의 소견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둬야 한다는 말이다. 젠더를 없애서 성 차별을 바로잡겠다는 말은, 인종차별에 맞선답시고 인종을 없애자는 얘기와 같다.

성 차이를 인정하지 않아 발생한 불행한 사건도 있다. 미국 심리학자 존 머니는 사고로 성기를 잃은 남자아이를 여성으로 양육하는 실험을 했다. 머니는 “아이는 여성으로 변했다. 젠더는 순전히 양육에 달린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틀렸다. 아이는 정체성 혼란을 겪었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저자는 “성 소수자(LGBT) 정체성도 꺾을 수 없다. 성적 지향과 정체성은 그들의 존재에서 변하지 않는 일부다”라고 설명한다.

드 발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그 조합에 따라 나타나는 남성, 여성 특성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어떤 영장류 암컷은 다른 암컷보다 더 수컷적이고, 반대 경우도 있다. 영장류 간에도 차이가 난다. 침팬지 사회는 폭력적이고 세력을 중요시하며 수컷이 지배한다. 보노보 사회는 평화적이며 섹스를 즐기며 암컷이 지배한다.

인류는 침팬지와 보노보 중 어디에 가까울까. 경쟁이라는 침팬지 특성과 협력이라는 보노보 특성을 모두 갖췄다. 남녀 차이가 나타나는 지점도 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친밀감과 정보 교환을 추구하고, 남성들은 어떤 일을 함께 하길 좋아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남녀 차이에 우열 관계는 없다. 다만 남성들이 몰려다니며 사고를 치거나, 여성들이 티타임을 즐기는 이유를 알 법은 하다. 흥미로운 것은 남녀 혼성팀의 잠재력. 의료인류학자 로라 존스가 200건의 외과의료 수술을 분석한 결과 남녀 혼성팀이 남성ㆍ여성 일색 팀보다 뛰어났다. 남녀는 직장에서 서로를 존중해야 하며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물학은 종종 페미니즘의 비판을 받았다. 먼저 잘못은 했다. 몇 명 학자들은 단순한 관찰을 바탕으로 “수컷의 바람기는 진화의 산물” “암컷은 수컷의 지배를 받는다” 등 어설픈 주장을 펼쳤다. 드 발은 풍부한 연구 사례를 제시하며 “젠더와 생물학적 성 차이는 있지만 이런 연구가 성 차별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바로잡는다. 성 차별과 편견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남성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남녀 차이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도 한다. 다양성 인정과 상호 존중의 필요성을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풀어놨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