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친 중국이 선물 주긴 했는데...베트남 "그래도 미국 못 버려"

입력
2022.11.03 19:00
'3연임' 시진핑, 베트남 당서기장 '1호' 초청 
베트남과 13개 합의서+교통·산업 지원 약속 
갈등 현안 못 풀어… '줄타기 외교' 이어질 듯

한때 멀어졌던 중국과 베트남이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양국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을 멀리하지 않는 베트남의 중립 외교 기조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을 이어왔다. 그러나 '1인 통치 시대'를 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하면서 화해의 물꼬가 터졌다.

다만 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갈등 현안을 완전히 풀어내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양국 사이의 껄끄러운 감정은 해소됐어도, 베트남이 미국을 배제하고 온전히 중국의 편에 설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뜻이다.

최고지도부 총출동… 중국의 극진한 '베트남 챙기기'

3일 베트남 관보 등에 따르면,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달 30일 2박 3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국빈 방문했다. 쫑 서기장은 3연임에 성공한 시 주석이 처음으로 초청한 해외 정상이다.

쫑 서기장이 도착하자 시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환영식을 개최했다. 이후 이어진 연회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 전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우의 훈장'을 쫑 서기장에게 수여하기도 했다.

중국은 최고 수준의 의전과 함께 베트남에 실질적 이득도 제공했다. 우선 중국은 △국경 교역 확대 △식품 수출입 확대 등 13개에 이르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번 합의 사항은 모두 베트남이 그동안 중국에 강력히 요청해온 항목들이다.

중국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와 중국 남부를 잇는 철도 건설도 진행키로 했다. 이어 베트남이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지정한 전자상거래 산업 발전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말 그대로, 중국이 베트남에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준 셈이다.

'탈압박 경로' 베트남 전략적 중요도 높아

중국이 베트남에 구애의 손길을 보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시 주석은 3연임 성공과 동시에 공표했던 '사회주의 현대화' 성공 가능성을 베트남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거대 담론을 던진 이상, 어떻게든 이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시 주석은 쫑 서기장과의 회담 이후 가장 먼저 "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전력을 다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미국이 펼쳐 둔 글로벌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핵심 탈출 경로'이기도 하다. 미국이 반도체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강도 높은 디커플링(탈동조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을, 베트남이라는 우회 수출 경로를 통해 탈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시 주석은 "중국은 베트남과 안정적인 산업공급망 시스템을 공동으로 구축하길 원한다"고도 거듭 강조했다.

中입장 동의하지만… 베트남, 중립외교 유지

베트남은 시 주석의 사회주의 현대화와 우회 수출 방식에 모두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체제를 유지하고 수출 규모를 늘릴 수 있는 중국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다.

그러나 베트남은 중국과 우호 관계를 회복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한 '혈맹'으로 넘어가는 것엔 미온적인 반응이다. 자국 국익의 핵심인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이 기존 입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신 중국을 택했을 때 베트남 경제에 더 손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실제로 시 주석과 쫑 서기장은 이번 회담에서 갈등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했다.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해 "이견을 적절히 관리하자"는 정도의 입장 표명에 그쳤다. 이는 영유권 기준선 책정을 원하는 베트남 입장과 거리가 멀다.

베트남 외교가 관계자는 "쫑 서기장의 방중 이후에도 베트남의 중립외교, 이른바 미중 사이의 '줄타기 외교' 기조는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양국 갈등 현안에 대한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베트남은 계속 미중 사이에서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방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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