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이렇게 짧은 숨도 못 쉬었는데... 그 생각만 하면 숨이 잘 안 쉬어져요.”
단장(斷腸). 자식을 잃은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에 비유된다. 지난 10월 29일 밤, 잠시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던 딸은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 더미에 짓눌려 숨졌다. 다음 날 오전 딸(25)의 황망한 부고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가슴을 치며 절규했다.
1일 밤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53)의 안경은 눈물자국으로 얼룩졌다. 입가는 거무죽죽했고, 부르튼 입술을 깨물어 생긴 피딱지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에게 골수를 기증했던 딸, 퇴근길 주차장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왔던 딸을 위해, 그리고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쓰러진 156명 유가족의 1명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바로 직전 빈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지만 묻어둔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두고 ‘놀러간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시선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한다.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비극을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치부해버리고,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주말에 거기에 한 번 간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요. 죽을 만큼의 죄인가요. 누구나 갈 수 있었던 현장에서, 지독히 운이 없어서 생긴 일이잖아요. 그런 잣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원금 문제도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정부가 1일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유족들에게 최대 1,500만 원의 장례비를 포함해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적절성 여부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유족들은 지원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냈을 겁니다. 어떤 말을 들어도 위로가 안 되는 상황에서, 장례비 문제로 논쟁이 일고 있는 것 자체가 유족 입장에선 너무 괴롭습니다.”
윤 대통령은 1일 밤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윤 대통령은 아버지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부디 건강을 잘 챙겨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에 “딸이 살고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8월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아버지는 이번 참사의 본질인 안전 문제를 거론하며 ‘국가의 역할’을 여러 번 언급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사람이 몰릴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던 핼러윈 축제 기간에 조금이라도 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이 없어요. 살려달라는 마지막 전화에 국가는, 경찰은, 서울시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요.”
그는 윤 대통령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참을 주저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갔다. “왜 그날 아무런 준비를 안 하셨습니까. 누군가가 조금만 빨리 지시했더라도, 혼잡하지 않도록 질서를 유도하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주최자 없는 행사를 탓할 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갖고 준비했더라면, 우리 딸 같은 친구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2일 새벽 1시. 발인이 5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아버지는 딸의 물건을 한아름 가져와 빈소의 식당 탁자에 올려놓았다. 친구들에게 아빠가 백화점에서 사줬다고 자랑했던 청바지와 블라우스, 딸이 유독 좋아하던 가족사진,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스티커 사진, 강아지 장난감, 그리고 늘 달고 지냈던 인공눈물까지.
납골당 한 칸에 다 들어가기 어려워보였지만, 아버지는 딸이 좋아하던 물건을 연신 챙겼다. “우리 딸은 그날 저녁도 못 먹어서 배고파했대요. 좋아하던 사탕도 넣어야 합니다.” 물건을 보여주던 아버지는 목걸이를 손에 꼭 쥔 채 흐느꼈다. 자신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에게 ‘행운의 상징’이라며 선물한 부엉이 목걸이였다. “작은 운이라도 따르길 바랐던 부모 마음이 과한 욕심이었나 봐요. 그런데 정말 이 말은 하고 싶습니다. 국가가 자식들 안전을 살펴주길 바라는 게 그렇게 과한 욕심이었던 걸까요.”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