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더 조심해야 했다', '이런 사건 하나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예민한 종자들', '반항하지 않아서 당한 거야', '가끔 때리는 건 가정폭력이 아니니 남편 기분 안 좋을 땐 더 잘해주세요', '상처는 별이 될 거예요'….
젠더폭력 피해자가 용기를 내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돌아온 반응들이다. 이런 말들은 문제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돌린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겪은 '보라'도 조서를 작성하던 근로감독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이런 일 가지고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정말 유별나시네요!" 그 역시 상사의 성희롱에 '그날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다면'이라는 자책을 떨쳐내기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책은 친족 아동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 폭력, 직장 내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폭력에서 살아남은 10명이 써 내려간 기록의 모음집이다. 젠더폭력 피해자가 인터뷰 대상으로 등장하는 기존 책들과 달리, 이 책에서 이들은 생존자이자 당사자로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직접 전한다.
그래서 이 기록은 당시의 폭력적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사건 이후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벌인 여러 방식의 싸움에 대해 말한다. 피해자 '보라'는 성희롱에 대해 문제 제기한 뒤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되고 직장에서는 해고당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에 출석해 보고, 고용노동부와 지방노동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합의까지 10개월이 걸렸다. 그는 말한다. "피해자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엮은이가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보다 잘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당연한 바람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