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용산구 이태원동 보행환경 개선 사업을 2013년 실시했지만, 이번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대해선 손을 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토지 소유주가 31명에 달해 이해관계가 복잡한 데다, 땅값도 비싸 서울시와 용산구는 10년간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가 개선 작업에 멈칫한 사이, 156명의 안타까운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1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2013년에 이번 사고가 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포함해 이태원동 음식문화거리를 대상으로 전체적으로 보행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정비 사업은 해밀톤호텔 뒤편의 전신주·통신줄 지중화와 거주자 우선 주차장 제거, 도로 포장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인 이태원동 123-8·9·16·17번지의 경우 전신주와 통신선 지하화 작업 정도만 이뤄졌다.
서울시는 그러나 보행권 확보를 서울시장 책무로 조례에 규정하고 있다.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 관련 조례에선 "서울시장에게 관광 및 상가 밀집도로 등 보행자 통행이 많은 구역의 보행환경 개선 등을 설정하고 관련 계획을 수립해 교통시설 운영·관리에 적용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보행 밀도를 포함한 보행안전 실태 조사를 조례에 명시했다. 이번 참사의 원인이 된 좁은 골목길 개선 의무가 서울시장에게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도로를 넓히는 것은 서울시가 아니라 용산구청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용산구청도 이번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주변이 땅값이 비싼 상업지역이라, 도로 폭을 넓히는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나 용산구가 손을 대지 못한 것은 복잡한 소유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4개 번지 191.7㎡(57.98평)의 소유주는 31명이었고, 서울시도 포함돼 있었다. 해당 골목을 소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건물주로 추정되며, 해밀톤호텔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 참사 현장 소유주들을 분석한 감정평가사는 "맹지에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이 도로 공유지분 소유자명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유주가 많다 보니 지자체들이 도로 확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기부채납이나 토지매입이 어려웠다는 얘기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도로를 넓히려면 서울시가 기부채납을 받든지, 토지를 매입해 추진할 수밖에 없다"면서 "해당 지역이 역세권인 데다 땅값도 높아 소유주들이 보유 지분만큼 권리 행사를 하려고 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1월 변경 고시한 '이태원로 주변 지구단위 계획 변경안'에도 사고 구역에 대한 보행 밀도 개선 계획은 담겨 있지 않았다. 2019년 이태원역 일대 보행 혼잡 위험을 지적한 설혜영 전 용산구의회 의원은 "도로 면적을 늘릴 수 없었다면,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면서 "사실상 서울시와 용산구청이 이를 방치해 참사를 초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