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단적으로 경찰은 사고 신고가 최초 접수된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보다 훨씬 앞서 여러 차례 보고된 위험 신호를 알고도 무시했다. 이는 긴급한 경우 경찰관이 필요한 경고나 조치 등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찰관직무집행법’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오후 7시 전부터 밀려든 인파로 보행자 통행에 문제가 생겼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오후 6시 34분부터 현장의 위험성을 알리는 112신고 11건이 접수됐다”며 과실을 인정했다. 이태원 상인 남인석(80)씨는 “경찰관이 한 명도 없어서 ‘이거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사고 발생 2, 3시간 전 이미 한 차례 일반인 통솔로 참사를 피한 사례가 있어 경찰의 적극적 대응이 아쉽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 영상엔 한 여성이 “여기 뒤가 꽉 막혀 있으니 못 올라온다고 앞으로 전해달라”고 말하자, 시민들이 호응해 “내려가”란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담겼다. 이에 많은 인파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한 일선경찰서 112종합상황실장은 “신고를 받고 방송 장비 등을 동원해 빨리 조치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당국은 전날까지 “집회나 시위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ㆍ제도적 권한이 없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입장을 유지하다가, 이날 윤 청장 등 고위 당국자들이 책임 일부를 시인했다. 위험 발생 방지를 위해 경찰관의 공권력 행사를 허용한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에 따른 것이다.
현장에선 경찰 특유의 ‘복지부동’ 문화가 화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그간 집회, 시위 등을 통제할 때 인권침해 시비가 자주 불거진 탓에 신속한 공권력 행사를 꺼리는 분위기가 퍼졌다는 것이다. 정보 업무에 종사하는 한 경찰 간부는 “위급한 상황을 판별하는 주체는 결국 현장 경찰관인데, 윗선 지시 없이 자체 통제에 나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사전 예고도 없이 통제를 시도하면 시민들은 격렬하게 반발한다”며 “스스로 교통정리를 하는 모범택시 운전자들보다 못한 조직”이라고 푸념했다.
급박한 상황 발생 시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수용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들은 일단 경찰 통제를 거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위기 정도에 따라 통제를 받아들이는 시민의식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