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축제를 왜 어른이 즐기냐고요?" 뜬금없는 '핼러윈 탓' 따져보니

입력
2022.11.01 17:30
"비기독교적 행사"라는데... 애초 행사 기원이 기독교  
북미 포함 전세계 곳곳서 어른들이 분장하고 행진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는 '핼러윈' 기간에 인파가 몰려서 벌어졌다. 이후, 온라인에선 '핼러윈 탓'을 하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내용을 보면 "서구에선 어린이 중심의 행사가 성인들의 놀이로 변질됐다"는 주장부터, "악령을 섬기는 반성경적 행사"라는 기독교 일각의 주장까지 다양하다.

이런 주장들은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은 희생자와 피해자를 탓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많은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의 핼러윈을 '전통에 어긋난 변종 행사'로 취급하는 주장조차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핼러윈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미국에서조차 성인들이 핼러윈 기간을 축제처럼 즐기는 데다, 비슷한 형태의 행사가 유럽과 아시아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칭은 기독교, 풍습은 아일랜드 전통과 결합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핼러윈을 '반성경적'이라고 표현하거나 '이교의 문화 관습을 포함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핼러윈 자체를 문제시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표현이 등장한다. 이들은 그런 논의를 제기하기에 부적절한 사건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다른 기독교 인사들이나 비(非)기독교인들과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핼러윈'이라는 이름 자체의 기원은 기독교에서 왔다. 가톨릭 전통에서 11월 1일은 '성자(Hallow)의 축일'인데, 그 전날을 '성자의 축일 전야(All Hallows' Eve)'라고 부르면서 성자와 순교자를 비롯한 모든 망자를 기억하기 위한 시간으로 삼았다. 현대에는 이것이 '핼러윈(Halloween)'으로 변한 것이다.

현재 '축제'화한 핼러윈의 기원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기독교 전통에 현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에 있었던 켈트 또는 게일 문화권 전통이 일부 결합됐다고 보는 연구자가 많다. 이는 북미로 유입하는 과정에서 현대 핼러윈의 모습을 가져온 것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계 이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호박이나 순무로 사람 얼굴을 조각하고 등불을 넣어 만드는 '잭오랜턴'은 출처가 아일랜드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반면 '트릭 오어 트릿'은 기독교에서 기념하는 11월 2일 위령의 날에 '솔 케이크'를 만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눔을 받는 관습을 기원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물론 현재처럼 아이들이 분장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군것질거리를 달라고 하는 형태 자체는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에 전파됐다.

민속학자 잭 샌티노는 기독교가 아일랜드에 완전히 정착하는 과정에서 켈트 전통과 공존했고, 그 결과 마침 10월 마지막 날에 기념되는 게일 문화의 망자 기념일 사윈(Samhain) 축제가 같은 시점인 성자의 날 전야와 결합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다른 종교는 핼러윈을 어떻게 생각할까?

기독교 전통에서 벗어나 사실상 '미국식 축제 명절'로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핼러윈의 영향력은 크다. 이 때문에 핼러윈을 보는 기독교도의 입장도 조금씩 엇갈린다. 로마 가톨릭은 핼러윈을 기독교 전통으로 보고 예배 행사를 진행하지만 축제로 즐기는 것도 인정하는 편이다.

개신교 입장에서도 10월 31일은 특별한 날이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에 붙여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날이기 때문이다. 개신교 교회 가운데서는 이에 착안해 종교개혁가나 성경 속 인물로 분장하도록 아이들에게 권하고, 음식을 나누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교 국가에선 정작 기독교 기원이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과 함께 핼러윈을 이단으로 경계해 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서서히 풀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까지만 해도 경찰이 핼러윈 행사를 중단시키고 참가자를 체포하는 등 엄격한 조치를 취했지만, 올해 핼러윈을 맞아서는 문화의 서구화를 시도하는 정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포의 주말'이라는 행사를 준비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수도 리야드 거리에는 서구의 핼러윈을 방불케 하는 특이한 분장이 넘쳐났다. 다른 이슬람교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네티즌들이 이를 두고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한탄하는 일도 벌어졌다.

세계 주요 도시 어디나 가장 행진·클럽 파티

핼러윈을 둘러싼 또 하나의 오해는 애초 핼러윈의 본질이 '트릭 오어 트릿'을 중심으로 한 아이들을 위한 행사인데,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성인들의 일탈적 축제로 변형됐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미국에서 실제 벌어지는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다. 뉴욕에서는 매년 10월 31일 세계 최대의 핼러윈 행진인 '빌리지 핼러윈 퍼레이드'가 열린다.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의상을 갖추면 참여할 수 있는 이 행진은 1974년 인형극과 연극 의상 전문가인 랄프 리가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작은 행진을 조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점차 참여자가 늘면서 덩치를 불렸고, 시 차원의 공식 행사로 거듭났다.

1974년 이래 이 행사가 취소된 것은 단 2번뿐이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 상륙으로 인해 뉴욕 거리에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사망자가 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우려됐을 때다. 2017년 핼러윈 때 뉴욕에서 트럭을 동원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행진은 예정대로 열렸다.


다른 도시에서도 핼러윈 시기마다 거리에서 특별한 의상을 자랑하거나, 그저 구경하기 위해 대규모 인원이 모여든다. 아예 이를 특별 관광상품으로 삼는 곳도 있다. 1692년 무고한 여성을 마녀로 몰았던 '세일럼 마녀 재판'으로 악명 높은 장소인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은 오컬트 마니아들의 성지가 되면서 300년이 넘은 현재는 오히려 핼러윈 시기를 전후해 마녀로 분장하는 '마녀 축제'를 열고 있다.

'드라큘라 백작' 이야기의 배경으로 흔히 홍보되고 있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브란 성에서도 핼러윈 파티를 연다. 올해 파티는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최근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가 주도했다는 설도 돌았는데, 루마니아 매체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식 핼러윈 축제는 아일랜드로 역수입됐다. 북아일랜드 데리에서는 1986년부터 '데리 핼러윈'이라는 이름으로 핼러윈과 사윈을 동시에 기념하는 대규모 축제를 열고 있다. 11월 2일을 '망자의 날'로 기념하는 멕시코는 핼러윈을 망자의 날 직전 행사로 간주해, 31일부터 2일까지를 축제 기간으로 삼는다. 홍콩의 란콰이펑 거리, 도쿄의 시부야 등에서도 특별한 복장을 한 이들이 핼러윈 시기의 거리를 메운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