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의 대상이 되는 기관들은 매년 가을이면 한바탕 몸살을 치른다. 필자가 있는 서울대학교도 국립대학법인이기에 이맘때면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 준비에 몰입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자면 지금과 같은 국감이 과연 어떤 순효용이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쓸데없는 일에 한바탕 동원되는 소모적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첫째, 불필요하게 무차별한 자료 요구에 피감기관의 행정력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 자료를 요청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점이 중요하니 파악할 수 있도록 자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보자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게 무조건 자료를 대령하고 보라는 식의 요청들이 있다. 예컨대 지난 10년간 있었던 학내 모든 위원회의 모든 회의록을 제출하라는 모호한 요청 같은 것이다. 어떤 점을 보고 싶은지를 알려주어야 더 적확한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것은 '국회에서 내라는데 웬 잔말이냐' '앞으로 더 힘들게 해주겠다'는 식의 으름장식 반응이다. 이런 일이 민간에서 벌어진다면? 아마 바로 국감장에 불려가 갑질이라고 지적당할 것이다.
마구잡이 투망식 요청에 피감기관의 행정력은 낭비된다. 본래 시험문제를 내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 몇 배 이상의 공부가 필요한 법이다. 본질을 꿰뚫는 좋은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특정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라면 그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전문성을 가지고 함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할 책무가 있다. 늘 단골로 등장하는 지엽적인 문제 말고 보다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를 바라는 것은 높으신 의원님들께 너무 무리한 기대일까?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문제다. 감사의 목적은 피감기관의 미래 발전에 있다. 문명전환기인 이 시기에 대학이 미래를 위해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하고 있는지 추궁하고 고등교육의 새로운 지향점을 세우고 실천하도록 지적하는 자리여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은 비교적 사소한 이슈에 대한 공방에 쓰인다.
셋째, 감사는 큰 틀에서 국회와 피감기관의 대화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국민의 요구와 피감기관의 현실이 서로 맞춰지면서 더 발전적인 생각을 갖도록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국감현장엔 경청이 없으니 대화도 없다.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이나 하라'는 일명 '답정너'식의 질문 아닌 질문과 자기과시로 뒤덮인다. 의원들은 피감기관이 무어라고 답하건 상관없이 그다음에 어떤 호통으로 받아칠까 미리 준비한 원고대로 읽곤 한다.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를 좀 올리려면 고성을 한 번 쳐야 하니 어이없는 핏대를 올리기도 한다. 조회수를 인정과 지지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는 정부부처뿐 아니라 대기업, 군대, 검찰, 언론, 노조 등 많은 기관들이 얼마나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지 매년 조사해 발표한다. 2013년부터 2021까지 국회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최하위이다. 그 일관성이 참으로 놀랍다. 이런 성적표가 나와도 각자 지역구 표몰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통합적 평가가 나쁘면 기존 의원들의 표를 비율대로 차감해 새로운 도전자에게 유리하도록 창의적인 선거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가을 풍광이 좋아 나섰던 시골길에서 이 칼럼의 주제에 대해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동료에게 '요지는 수준 있는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는 거죠'라고 말한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수준 있는 국회의원이 어디 있어요? 시골 노인네들을 데려다 놓는 게 훨씬 낫지' 돌아보니 한 촌로가 마늘밭을 돌보면서 무심하게 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