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이태원'은 달랐다… "입출구 따로 만들고, 경찰이 클럽 가드 역할"

입력
2022.11.01 12:00
대규모 인파 모이는 축제와 행사, 선진국 대응은
홍콩, 경찰이 적정 인파 통제, '선발대'로 통행 관리
미국, 군중 밀집도 관리 연방 지침 따라 분산 조치
일본, 감시탑 'DJ 폴리스' 안내, 심야 음주 금지도

지난달 29일 밤, 155명 청춘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이태원 참사. 수십만 명의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됐지만 행사 '주체'가 없다는 이유로 경찰도 관할 지자체도 누구 하나 안전에 철저하게 신경 쓰지 않았고, 끔찍한 비극 뒤에도 누구 하나 마땅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외국은 달랐다. 미국과 일본, 홍콩 등 우리보다 앞서 압사 사고로 인명 피해를 겪은 선진국들은 '주최 없는 축제'라도 군중이 몰리는 행사라면 지켜야 하는 저마다의 선제적인 대비책을 갖춰 놓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는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습득해야 할 안전 매뉴얼에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봤다.

먼저 '홍콩의 이태원'으로 불리는 란콰이펑(蘭桂坊)의 대응부터 살펴보자. 란콰이펑은 여러모로 한국의 이태원과 닮아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식당, 클럽, 술집들이 몰려 있을 뿐 아니라, 이태원처럼 좁고 경사진 골목과 나선형 계단이 많다는 점에서 지형적 특성까지 유사하다. 란콰이펑에서 열린 핼러윈 축제 사진들만 보면 한국의 이태원과 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①입구와 출구 따로 만들어 인원 통제 "경찰이 클럽 가드 역할"

하지만 란콰이펑과 이태원의 핼러윈을 가른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인파 곳곳에 껴 있는 경찰, 곳곳에 설치돼 있는 펜스와 표지판들이다. 란콰이펑의 핼러윈 축제 역시 별도의 주체는 없다. 그러나 경찰은 '란콰이펑 광장 핼러윈 기간 인파 관리 및 교통 체계'라는 매뉴얼을 따로 만들어 적극 개입,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입구와 출구를 따로 만들어 놓은 점이다. 홍콩에서 거주하며 3년째 란콰이펑 핼러윈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정민씨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핼러윈 축제 기간 홍콩 경찰은 일종의 클럽 경비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들이 입구와 출구를 막고 적정 수준의 인파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입구와 출구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15분에서 20분마다 입구를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숫자를 제한해서 들여보내고 나가는 숫자를 확인한다"고 했다.

②일방통행 원칙, 표지판 든 '선발대' 경찰 따라 줄지어 이동

란콰이펑 핼러윈 축제에서 눈에 띄는 건 인파 속에 경찰이 함께 나란히 이동하는 모습이다. 원칙은 일방통행이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서로 부딪히는 위기 상황 자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골목마다 배치된 펜스를 따라 사람들은 '선발대' 역할을 하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일렬로 줄지어 질서정연하게 따라 움직인다. 일방통행이 지켜지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이 공간을 벌리며 속도조절에 나서, 인파의 동선을 관리하고 통행 흐름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다. 멀리 있는 군중이 잘 볼 수 있도록 표지판을 든 모습도 이채롭다.

축제 지역 주변 도로를 사전에 통제해 놓는 것은 필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차 등이 대기하고, 별도의 공간도 마련해 놓는 등 안전 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모습이다.

홍콩 경찰이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29년 전인 1993년 새해 전야제를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 21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다치는 참사를 겪은 후 사전 통제 대응책이 마련됐다.

③군중 밀집도 기준 정해 놓은 미국, 바리케이드 쳐서 인파 분산

미국의 경우 군중의 밀집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별도 지침까지 마련해 놨다. 연방재난관리청이 2005년에 만든 '특수상황비상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외부 행사 때 1인당 공간이 최소 0.3~0.5제곱미터(㎡)가 필요하다고 제시해놓고 있다. 1㎡당 2, 3명 이상 몰릴 경우 당국이 적절한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명시해 놨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매년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 '볼드롭(ball drop)'의 경우 100만~200만 명의 대규모 인파가 몰리지만 사방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구획화하면서 인파가 분산돼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뉴욕은 핼러윈 축제 때 주요 100개 구간에 보행자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 '차 없는 거리'를 실시하기도 한다.

④일본, DJ폴리스가 감시탑 차량에서 동선 관리... 심야 음주 금지도

도쿄 번화가 시부야(渋谷)에서 매년 대규모 핼러윈 행사가 열리는 일본 역시 축제 때마다 경찰 인력이 총출동한다. 바리케이드를 쳐서 보행자 전용도로를 구축하고 일정 방향으로 통행을 유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경찰의 임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DJ폴리스'로 불리는 경찰들은 감시탑 차량에 올라 거리를 이동하며 시민들의 동선을 안내한다. 편의점 등에 주류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등 심야 음주도 일시 금지하는 것도 눈에 띄는 안전 조치다.


강윤주 기자